[언스타그램]을지다방과 BTS, 그리고 사진

서울 을지로에는 을지다방이 두 개다. 을지로3가역 10번 출입구를 나오면 바로 옆 건물 2층에 을지다방이 있다. 거기서 30미터쯤 시청 방향으로 걸어가면 또 2층에 을지다방이 있다. 두 다방 사이에 특별한 관계나 왕래는 없다. 이름과 메뉴 외에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가수들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가까운 을지다방에는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큼직한 사진들이 여러 장 붙어 있다. 주인이 이찬원의 대단한 팬이다. 그리고 다른 을지다방에는 아이돌 그룹 BTS의 사진들이 두루 붙어 있고 크고 작은 액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을지로 3가역 10번 출입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을지다방. 가수 이찬원의 사진을 창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붙여 놨다. ⓒ허영한

이 을지다방은 사실 옛 을지면옥 건물 2층에서 40년 가까이 장사했다. 을지면옥 건물터가 재개발되면서 헐리고 지난해 7월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가게 자리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주인은 옆에 을지다방이 있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오래 해 오던 가게의 상호를 바꾸는 게 아까워서 그대로 쓰기로 했다.

BTS 사진과 달력과 쿠션 등으로 장식한 을지다방 내부. 을지면옥 건물에 있었던 40년 된 'Gold star' 에어컨도 그대로 가져다 달았다. ⓒ허영한

이 을지다방(여기서만 편의상 ‘BTS 을지다방’이라 쓰겠다)은 을지면옥 위에 있을 때 BTS 멤버들이 방송 프로그램 촬영차 왔었다. 그때부터 ‘BTS 성지’가 되기를 희망했던 주인이 촬영 당시 멤버들의 사진 액자를 만들어 놓고 쿠션과 달력 등 BTS '굿즈‘를 갖다 놓고 붙였다. 이사를 하면서 테이블과 소파 등 집기와 사진들을 그대로 이곳에 가져다 옮겼다. 사진 외에 눈에 띄는 것은 수십 년 된 ’Goldstar(금성)‘ 에어컨이다. 여전히 ‘빵빵하게’ 잘 돌아간다. 사진 덕분인지 젊은 손님들이 꽤 많이 와서 차도 마시고 사진도 찍어간다 했다.

가수 이찬원의 사진들을 대거 붙여놓은 을지다방 내부. BTS 쪽에 비해 사진 크기 부터 압도적이다. ⓒ허영한

다른 을지다방(여기서만 편의상 ‘이찬원 을지다방’이라 쓰겠다)은 을지로에서 70년을 장사했다. 주인은 가수 이찬원이 ‘예뻐서’ 팬이 됐고, 사진도 구해다 붙였다. 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직접 사진도 갖다 붙이고 모임도 활발히 한다 했다. 두 집 메뉴는 약간 차이가 있는데, 역시 옛날 다방 메뉴의 대표는 쌍화차다. 두 집 쌍화차를 비교해 봤다. ‘BTS 을지다방’ 쌍화차는 고급진 입체 무늬 흰 도자기 잔에 나온다. 처음 가면 직원이 쌍화차 마시는 법을 가르쳐준다. 먼저 티스푼으로 달걀노른자를 눌러서 뜨거운 차에 표면을 코팅하듯 살짝 익혀주란다. 그리고 노른자를 먼저 떠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 돈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면 향긋한 한약재와 견과류 맛이 조화롭고 마음에 평화를 준다. 쌍화차는 향과 맛이 깊다.

'이찬원 을지다방'의 쌍화차(왼쪽)와 'BTS 을지다방'의 쌍화차 ⓒ허영한

‘이찬원 을지다방’ 쌍화차는 황갈색 줄무늬 잔에 나오는데 잔이 깊고 양이 많다. 쌍화차를 주문하면 주인이 노른자를 넣어 줄지 물어본다. 해바라기 씨와 호박씨, 호두 등 견과류가 듬뿍 들어서 소식(少食)하는 사람이라면 한 끼 식사가 되겠다 싶을 정도다. ‘옆집’보다 단맛이 강하고, 달걀노른자를 살짝 익혀 코팅하기에는 덜 뜨겁다. 견과류가 많아서 온도를 떨어뜨렸을 수도 있겠다. 티스푼이 좁아서 달걀을 뜨기 불편하다. 찻잔을 입에 대고 덜 익은 달걀을 티스푼으로 밀어 넣으니 생달걀의 약간 비린 맛이 났다. 차 맛도 깊다는 느낌은 아니다. 다방을 찾는 사람마다 이유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쌍화차 때문인지 사진을 비롯한 분위기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물론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쌍화차가 아니라 커피다. 그 '다방 커피'.

을지로 3가역 10번 출입구에서 3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을지다방 입구. BTS 성지가 되고 싶은 희망을 담아 사진과 꽃 장식을 해 놓았다. ⓒ허영한

인스타그램에 ‘#을지다방’을 검색하면 대부분 ‘BTS을지다방’ 사진이다. 꾸준히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 보면 꽤 알려지고 사진의 도움을 받는 모양이다. 이찬원 사진은 을지다방과 연계돼 검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이찬원 팬들은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굳이 주인한테 물어보지 않았다. 두 집 모두 가수들 사진이 영업에 도움이 됐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아주 그렇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BTS 을지다방’에 가서 데뷔 10주년인데 팬들 많이 찾아오셨는지 물었다. “글쎄요, 다들 어디 가셨을까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성지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쓰던 계산대. 'BTS 을지다방'에서 지금도 쓰고 있다. ⓒ허영한

팬들이 직접 찾아오는 건 이찬원 쪽이고, BTS 쪽은 팬 아니어도 인스타그램 보고 신기해서 한 번 와보는 젊은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도심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무슨 장사인들 쉬울까? 어려운 가운데 오랜 기간 장사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장인들을 존경한다. 이왕 붙여 놨으니 사진도 영업에 많은 도움 되기를 바란다.

사진부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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