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비트]'원격 우선 회사에 투자 안해'…스타트업계 충돌[오피스시프트](30)

스타트업 업계서 코로나 계기로 실험 한 뒤 평가 쏟아져
대기업보다 원격 비중 커…사무실 비용 절감 등 이점도
"모두가 완전 원격 전환? 그건 실수" 올트먼의 한마디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원격 우선 회사(Remote-First Company)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페이팔, 링크드인 부사장 출신의 미국 벤처 투자자 키스 라부아즈는 지난 4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렇게 자신의 투자 원칙을 설명했다. 그가 이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그는 트위터를 통해 'IRL(in real life·현실 세계)'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면서 "야심 찬 사람들은 IRL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시기 원격근무하는 기업들을 보고 만든 투자 원칙이었다.

곧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2004년 창업해 2012년 상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맛집 검색·리뷰 애플리케이션 '옐프'의 제레미 스토펠만 최고경영자(CEO)는 라부아즈 트윗에 태그를 걸고 "그건 윈도우95를 실행하는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사무실 근무 시스템은 중단됐고, 이제 완전 원격을 받아들이며 살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해 6월 옐프의 근무 체제를 원격근무 우선으로 바꿨다.

지금 전 세계에 있는 5000명 가까운 옐프 직원들은 원격 기반으로 일한다. 사무실에 나오고 싶어하는 직원을 위해 곳곳에 사무실을 마련해 두기도 했는데 사용률이 너무 낮아 공간을 줄여왔다. 지난해에만 미국의 뉴욕, 시카고, 워싱턴 등 사무실 세 곳을 없앴고 다음 달 초 미 피닉스와 독일 함부르크 사무실도 문을 닫는다. 미국에는 이제 사무실이 딱 한 곳 남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아낀 비용만 연간 최대 2800만달러(약 360억원)이다.

원격(재택)근무는 과연 옳은가. 코로나19 이후 해소되지 않은 이 질문을 두고 '혁신의 아이콘'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이렇듯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라부아즈와 스토펠만 CEO의 충돌은 최근 이 업계에서 벌어지는 원격근무 논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기술을 기반으로 원격근무하는 스타트업이 있었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대적인 실험을 경험한 뒤 창업자와 직원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까지 각양각색의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근무제도에 따라 투자 여부를 결정하겠다니, 코로나19로 시작된 원격근무 실험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뒤바꿀까.

◆ 원격근무 비중 높은 스타트업…이들이 성장한다면

스타트업을 포함한 소기업이 원격근무를 채택하는 비율은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기업의 근무지 유연성을 평가하는 업체 '플렉스인덱스'가 올해 2분기 기준 3800여개의 글로벌 기업을 조사한 결과 직원 수가 500명 이하인 기업 중 완전히 일하는 공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곳은 63%나 됐다. 반면 직원 수가 5만명이 넘는 기업은 그 비중이 13%에 그쳤다. 직원 수가 많을수록 사무실 출근과 원격근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 시기로 봐도 최근에 사업을 시작한 회사일수록 일하는 장소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회사가 더 많다. 플렉스인덱스의 1분기 자료를 보면 2000년 이후 창업한 회사가 근무지의 유연성을 제공하는 비중이 최소 71%, 최대 88%에 달했다면, 1980년~2000년 사이에 창업한 회사는 50%대였다. 창업 시점에 따라 '어디에서 일하건 상관없다'라고 하는 비중이 20~30%포인트 격차를 보인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업계는 원격근무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 창업 기업을 의미하는 만큼, 대기업과 비교해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데 비교적 열려있다. 신기술에 관심이 많고 대기업보다는 직원 수가 적은 데다 일 문화도 유연하고 민첩한 만큼 새로운 근무 제도를 도입하기에 좀 더 수월하다.

원격으로 일하면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에도 비교적 유리하다. '일당백' 인력이 필요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원격근무를 도입해 아이디어 넘치는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엄청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직원 중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20·30세대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도입을 고려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을 원격근무의 유혹에 빠트리는 건 사무실 월세다. 비용 절감의 효과가 원격근무를 받아들이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자본력이 비교적 밀리는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지원책에 사무실 지원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무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스타트업에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가 간다.

원격근무 트렌드를 20년 가까이 분석해온 닉 블룸 스탠포드대 교수는 "젊은 기업에서 재택근무(WFH·Work From Home)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많은 스타트업이 완전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며 "(스타트업이) WFH 하는 기업의 비중을 끌어올리는 핵심 주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스타트업은 경제 성장과 함께 이러한 WFH 도입 트렌드를 확산하게끔 하는 미래의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빅테크 기업이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지금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원격근무를 적극 도입, 온몸으로 경험한 스타트업의 문화가 미래 세계 경제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 "원격근무가 기본 되진 못할 것"…"결국 중요한 건 숫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본력을 갖춘 VC 등 투자자들의 발언은 스타트업 창업자에 어떤 영향을 줄까? 투자할 때 근무제도를 들여다보겠다는 라부아즈와 같은 투자자가 나오는 만큼 업계 내 관계자들의 평가는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뒤바꾸는 데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야말로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 한마디로 '숫자'를 중요하게 보는 이들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두 유명 인사가 원격근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발언을 내놨다.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로 평가받는 와이콤비네이터(YC)의 창업자인 유명 벤처 투자자 폴 그레이엄과,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YC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개발사 오픈AI CEO를 맡은 샘 올트먼이다. 이들은 세계 기술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빨리, 눈앞에서 지켜보고 평가해온 인물이다.

그레이엄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원격근무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꿔 다시 직원들을 사무실로 돌아오게끔 하려는 여러 창업자와 대화를 나눴다"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코로나19 이전으로 (근무 형태가) 완전히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상당 부분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왜 이 모든 똑똑한 사람들이 (도입했던 근무 제도를 다시 바꾸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 내 생각엔 애초에 (그 회사의) 대면 작업 시스템 자체가 건강했다면 부분적으로 재택근무는 처음에는 작동했다고 본다. 또 이러한 부분이 항상 어려움을 겪었던 인력 확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줬을 것이다. 원격 우선 회사가 디폴트(기본 근무제도)가 되진 못할 것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올트먼 CEO도 지난달 한 핀테크 회사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비슷한 발언을 내놨다.

"오랫동안 기술 산업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완전 원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손실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말하건대 실험은 끝났고 그 기술은 아직 사람들이 영원히 완전 원격 근무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특히 스타트업 말이다."

원격근무의 패배를 선언하는 듯한 발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레이엄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던 것처럼 원격근무를 우선으로 하는 회사가 앞으로도 지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원격 우선 제도가 일부 사업에서는 작동을 한다. 소비자를 상대하는 서비스처럼 일부 직종은 원격으로 업무가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트먼 CEO도 "일부에서는 작동한다"며 "우리 뛰어난 직원 중 일부는 원격으로 일하고 우리는 항상 그걸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원격근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 봤지만 결국 모두에게 적용하기엔 사업이나 직업 특성에 따라 일부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국내도 이러한 상황이 예외는 아니다. 국내의 한 액셀러레이터 업체 관계자는 "직접 원격보다는 대면 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투자 집행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투자 기업과 대화를 나눌 때 숫자(매출, 순익 등)가 떨어지거나 내부적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곳이 있거나 하면 재택보단 출근하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원격근무를 해도 생산성이 잘 나오는 곳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며 "결국 중요한 건 숫자"라고 설명했다.

국제2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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