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텀하우스 좌담] '전세계가 주목하는 초저출산 한국 ... 정책 뿌리부터 돌아봐야'

통계청 기준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세계에서 가장 나쁜 기록 매년 갱신 중"
직접지원 늘리고, 사전준비 철저 후 이민 수용해야

편집자주저출산 문제는 이른바 '회색 코뿔소'에 비유된다.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색 코뿔소'가 우리 곁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셈이다.아시아경제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과 해법 모색’을 주제로 ‘월례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박기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사무총장, 유재언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나다순)가 참석해 저출산 문제의 현황과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 모색에 머리를 맞댔다. 세 전문가는 "합계출산율이 1.3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인구의 자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신호"라며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우려를 표했다.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출산과 보육 등 직접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관련된 직접지출 예산이 OECD 평균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6년간 무려 280조원을 쏟아부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예산 총액에서 교육, 주거 등 양육 여건과 관련된 간접지출을 빼면 실질적인 직접지원 예산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예산 집행과정에서 직접, 간접지원 사업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직접지출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한편 참석자들은 대기업 및 정규직 틀에서 벗어난 사각지대 근로자들을 위한 저출산 대책이 부족하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또한 기업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가족 친화 경영을 펼치며 국가의 저출산 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이번 좌담회는 참석자 명단은 공개하되 각 발언자의 발언은 익명 처리하는 ‘채텀하우스 룰’을 따랐다. 다음은 토론 주요내용.

지난 7일 서울 중구 아시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아시아경제 채텀하우스 좌담회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과 해법 모색'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날 좌담회에는 박기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사무총장, 유재언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참석해 저출산 문제의 현황과 해결책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 사회 = 김필수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매니징에디터

<사회> 인구 감소세가 확연하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토론자B>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한지 나타내는 지표는 두가지다. 합계출산율과 출생아수다.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이었다. 2021년 기준 출생아수는 26만562명이었다. 이건 매우 심각한 수치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데 그 ‘나쁜 기록’을 매년 자체적으로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 정도냐면 전쟁을 치르는 국가들보다도 나쁘다. 오랜 전쟁을 치러온 중동국가들보다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자A>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주요 인구경제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 국가’다. 인구학적으로 저출산 중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초저출산’ 국가의 기준을 합계출산율 1.3명으로 보는데 이미 우리나라는 2001년에 1.3명까지 내려간 상태다. 그 이후에 반등하지 않고 있다. 저출산 사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럽의 노르딕 국가들이나 프랑스, 영국 등은 최저 출산율이 1.45정도에서 멈췄다.

◆전세계 인구학자들 초미의 관심사된 '초저출산 한국사회'..."출산 선택해야 하는 이유 부족한 게 핵심"

<사회> 왜 유독 이렇게까지 심각할까. 원인을 어떻게 보나.

<토론자C> 경제적 여유가 지금보다 더 없었던 시절에도 결혼은 하고 아이를 낳았다. 문화가 많이 바뀐 게 핵심이다. 인생에 있어 표준적인 ‘라이프 코스’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의 경로 외에 다양한 ‘라이프 코스’ 선택지들이 존재한다.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가질지 마질지에 대해서 정답으로 여겨지는 코스가 없다.

그저 매 단계마다 개인이 책임지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라이프 코스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너무나도 ‘지쳤다’는 것이다. 대입과 취업이라는 삶의 단계를 거치면서 정서적, 심리적 자원을 지나치게 소모했다. 결혼-출산이라는 라이프 코스를 선택하기에 ‘번아웃’에 처했으니,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토론자A> ‘삶의 질’이라는 개념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삶의 질 수준이 높아야 아이를 낳는다. ‘삶의 질’을 구성하는 객관적 요건은 두가지다.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 그리고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다. 이 두가지가 모두 플러스 상태일 때 행복한 상태고 이때 아이를 낳는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의 삶의 질은 어떤가. 우리나라 청년들은 플러스-마이너스 상태이거나 마이너스-마이너스 상태다. 경제적 조건이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성별불평등 등 요인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낮은 ‘플러스-마이너스’ 상태 청년들은 ‘미스매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다. 돈을 괜찮게 벌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다. 마이너스-마이너스 상태인 청년들도 있다. 이른바 ‘박탈의 상태’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정서적으로도 힘든 상태다. 당연히 아이를 낳지 않는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는 35위다. 이 정도면 아이를 낳으려는 의지가 없을 수밖에 없다.

<토론자B> 그런데 삶의 질로만 보면 베이비부머들에 비해서 좋아진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오히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하나.

<토론자A> 객관적인 삶의 조건이 나빠도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이걸 ‘적응’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아이를 낳는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적응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문제의식이 성장하면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여성은 ‘왜 굳이 아이를 낳아서 독박육아를 하나’하는 문제의식을, 남성은 ‘왜 내가 가장이 되어서 부양부담을 가져야 하나’하는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적응이 되지 않고, ‘불일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좋아졌지만, ‘불일치’ 혹은 ‘박탈’의 상태다. 플러스-마이너스, 마이너스-마이너스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

◆16년간 280조 쏟아부어도 해소되지 않은 문제...예산 실효성 따져보니 저출산 '핵심 타깃' 지원책 적었다

<사회> 우리나라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왔다. 16년간 280조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정부 인구정책의 문제점은 뭔가.

<토로자C> 엄밀히 말해 280조원은 잘못된 수치다. 저출산 정책은 ‘간접지원’과 ‘직접지원’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육아와 양육, 보육 서비스 정책 같은 ‘직접지원’ 정책이 핵심인데, 이것만으로 따져보면 우리나라에선 실질적인 저출산 지원 정책이 많지 않았다. 특히 육아와 관련한 현금 지원 정책이 OECD에 비해서 부족했다. 실제로 직접 지원 예산을 따져보면 280조가 아니다.

<토론자A>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이하 ‘저고위’)에서도 저출산 예산을 점검하면서 직접지원과 간접지원으로 분류했는데, 예산검토문서를 보면 2021년 예산을 기준으로만 봐도 직접지원 비중이 40%정도 뿐이다. 2020년까지는 이런 분류가 공식적으로 없었다가 이같은 수치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본지 5월22일자 관련기사: [단독]저출산 예산 '거품' 걷어낸다]

저출산에 쏟아부은 280조라는 예산의 상당 부분이 ‘거품 예산’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미국이나 코스타리카 정도인데, 출산율이 높은 국가들이 어떻게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가족복지에 대한 지원, 즉 실질적인 ‘직접지원책’을 늘려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출산율이 높은 국가들은 직접지원책 비중이 높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쏟아부은 게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정부의 원죄라고 본다.

<토론자B> 맞다.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용으로 분류됐던 예산의 효용성들을 좀 다시 살펴봐야한다. 부모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들이 제시되어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 OECD에 비해 적은 예산을 투입했다고 해서 정부의 정책 실패가 용인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출산율을 올리는데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저출산에 따른 영향에 대응할 것인지 저출산 대책의 방향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토론자B> 중요한 포인트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지점이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정부는 합계출산율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끌어올려야 하는지를 핵심적인 목표로 제시하다가 지난 정부부터 ‘삶의 질 제고’라는 목표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더이상 합계출산율을 얼마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기획재정부가 인구 문제 대응을 주도하면서, 저출산 ‘타개책’이 아닌 ‘적응책’이 메인 어젠다로 제시되며 고민되어왔다. 그러다가 또다시 최근 몇달 간 어젠다가 바뀌었다. 다시 저출산이 ‘사회문제’라는 인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 뿐 아니라 복지부, 저고위 등이 모두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인구정책기획단’을 출범 하기로 했다. 여기서 다양한 문제들이 함께 논의될 것 같다.

◆"성평등 정책만으론 부족해..사회적 돌봄부터 가족친화적 제도, 소득 문제 등 모두 톺아봐야"

<사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토론자C> 무엇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짜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제도의 효용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길게 육아휴직을 주는 것보다, 남녀 모두가 일과 육아의 균형이 맞춰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를 봐야 한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소득이 조금 줄긴 하더라도 나름대로 육아와 일을 충분히 병행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같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데 착안해야 한다.

<토론자B> 유럽 사례들을 참고할만하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가족정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스웨덴이나 혼외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의 정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 프랑스는 다양성 관점에서 혼인신고한 가족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 중심으로 지원해 사회통합을 강화한다. 우리나라는 혼외출산비율이 3%도 채 되지 않지만, 다양한 관계들을 법적으로 품는 게 필요하다. 또 헝가리는 현금지원을 강화했을 때 출산율이 다소 반등했다고 한다.

<토론자A> 이른바 ‘이행의 계곡’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이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그 이후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일과 가정이 온전히 양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평등적인 사회보장정책들이 유럽에서 추진됐고 출산율이 다소 반등한 것이다. 때문에 성평등한 관점에서 정책들을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나, 그것만으로 출산율이 충분히 반등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뻔한 이야기일 수는 있으나 투트랙 전략이 중요하다. 성평등적 관점에서 돌봄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부모와 가정을 대상으로 한 일가정 양립정책과 동시에 소득 문제에 대한 대응책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일-가정을 양립시키려면 ‘사회적 돌봄 체계’와 ‘가족 친화적 제도’가 완비되어야 한다. 독일은 1990년대 말부터 영유아기부터 사회적 돌봄체계를 확립했다. 이른바 ‘킨더가르텐 제도’라고 해서, 영유아 1세부터 국가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또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생까지는 가정에서 원할 경우 무조건 돌봐주는 ‘전일제학교’를 확대했다. 전체 학교의 70% 정도가 전일제 학교다. 독일이 이런 식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펼친 시점이 2000년대 초반이었고, 2007년정도 부터 출산율 반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분석된다. 나아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기업들 또한 가족친화적인 경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사회>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저출산 대책으로 거론하는 '이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토론자B> 결국엔 추진해야 할 대책이다. 다만 컨트롤타워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토론자A> 같은 생각이다. 결국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만 함께 들어오는 가족단위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동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이들의 거주지역이 일종의 게토(Ghetto, 빈민가)화하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쓰는 게 사회 안정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경제금융부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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