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온유기자
역전세가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까지 덮쳤다. 올해 5월 서울 자치구별 최대 단지 25곳 중 21곳(84%)의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하던 역전세의 현실화로 전셋값이 수억 원씩 감액되면서, 아파트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세입자의 공포도 날로 커지고 있다.
30일 아시아경제가 서울 자치구별로 세대수가 가장 많은 아파트 25곳을 추려 전셋값을 추적해보니 올해 5월 가격이 2년 전 2021년 5월 가격보다 낮은 곳은 21곳에 달했다. 강동·금천·중랑·동작구를 제외한 강남·강북·강서·관악·광진·구로·노원·도봉·동대문·마포·서대문·서초·성동·성북·송파·양천·영등포·용산·은평·종로·중구가 이에 해당했다.
전체의 84%가 집주인이 새로 받는 돈보다, 돌려줘야 할 돈이 많은 역전세에 해당하는 셈이다. 전셋값은 국민 평형인 전용면적 84㎡의 최고가를 비교 기준으로 삼았다. 해당 아파트에 올해 5월 실거래가 없는 금천·양천·용산·은평구는 4월 실거래가를, 85㎡ 전세 계약이 없는 노원은 59㎡ 실거래가로 비교했다.
2년 사이 전셋값이 가장 많이 하락한 단지는 서초구 반포자이였다. 20억원에서 14억원으로 6억원(30%) 깎였다. 광진구 구의현대2단지는 9억6000만원에서 6억2000만원으로 3억4000만원(35.4%) 내렸다. 강남구 은마 아파트는 10억원에서 7억원으로 3억원(30%) 하락했다. 종로구 경희궁자이2단지도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3억원(25%) 내렸다. 동대문구 래미안위브는 8억9000만원에서 6억원으로 2억9000만원(32.6%) 낮아졌고, 강북구 SK북한산시티는 6억7000만원에서 4억원으로 2억7000만원(40.3%) 내렸다.
집계상 역전세난이 일어나지 않은 강동구 고덕그라시움은 2021년 5월 최고가가 4·6월 대비 유난히 낮았고, 금천구 벽산5단지·동작구 신동아리버파크·중랑구 신내데시앙포레 등 전셋값이 6~9월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서울 자치구 25개 전체에서 역전세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역전세는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의 보증금만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태를 말한다. 이 같은 역전세가 서울 전역에 확산한 것은 2년 사이 새 임대차보호법 여파로 전셋값이 급등한 상태에서, 미국발(發) 고금리 여파로 국내 전세 기피가 늘며 전셋값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넷째 주 기준 서울 전셋값은 올해만 누적 10.86% 하락했다.
집주인이 2년 전 높은 전셋값을 레버리지로 갭 투자했다면, 세입자는 수억 원 꺾인 보증금을 돌려받기 쉽지 않을 수 있다. 2년 전 전셋값 급등에 불가피하게 터를 옮겨야 했던 세입자들은, 이제 보증금 미반환의 악몽을 꾸고 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역전세는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전세 시장의 소화불량으로 볼 수 있다"며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집주인이 급매물을 내놓는다면 매매시장까지 압박하면서 올해 부동산 시장에서 금리나 경기침체보다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