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가 원자폭탄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만큼 핵 군축과 대러제재 등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가 연달아 발표됐다. 일본 안팎에서도 이번 회의가 평화의 상징처럼 다뤄지는 가운데, 정작 일본 내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은 "G7 회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날을 세워 비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성명이 사실상 핵폐기를 이끌어 낼만한 실효성도 없었던 데다가, 일본도 자국 방위력 증강을 외치는 마당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며 러시아와 중국의 핵 증강만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22일 히로시마 지역지 주고쿠신문에 따르면 전날 원폭 피해자들은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G7을 비판했다. 원폭 피해자이자 핵군축 운동가인 설로우 세츠코씨는 히로시마 시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G7은) 실패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G7이 발표한 핵 군축 관련 내용이 담긴 '히로시마 비전'을 두고 "자국의 핵무기는 긍정하면서, 대립하는 국가의 핵무기를 비난만 하는 말은 피폭지 히로시마에서 허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방위력 증강 등을 외치며 미국의 핵우산 등에 의존하는 일본이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러시아나 중국만 비난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의미다.
일본 원폭 피해자 모임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도 같은 날 오후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G7은 핵우산 아래서 전쟁을 부추기는 회의였다"고 날을 세웠다. 다나카 테루미 대표위원은 “피폭자들은 핵무기와 인류는 공존할 수 없으며, 가능한 한 빨리 핵폐기를 목표로 해달라고 호소해왔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여전히 중시하는 등 아무런 변화도 끌어내지 못해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키도 스에이치 사무국장도 “핵폐기를 전면에 내세워 논의할 것을 촉구해왔는데, 결국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회의가 돼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G7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핵보유국이 속해 있고, 나머지 나라도 미국 핵우산 아래 있는 만큼 사실상 핵 억지력을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미마키 토시유키 히로시마현 피폭자협회 이사장은 이날 회견에서 “히로시마 비전은 핵 억지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러시아를 제외한 나라라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보유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G7은 회의 첫날인 지난 19일 “핵무기 없는 세상은 핵 비확산 없이 달성할 수 없다”며 핵 군축에 관한 별도 성명을 처음 발표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향해 핵실험 자제를 촉구하고,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핵 위협과 중국의 핵 증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