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외로움 수업'<5>-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편집자주전 MBC 드라마 PD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쌓아온 김민식 PD. 2020년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자신 또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기에 그럴 의도는 없었다. 내 편을 모아 보호막을 칠 수도 있었지만, 평소 글의 완성은 독자의 해석에 있다는 소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했다. 사과와 더불어 수년간 써왔던 신문 칼럼을 중단하고, 24년 다닌 방송국을 자진 퇴사했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대중과 소통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마저 접은 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외로움의 터널 속에서 천천히 자기만의 답을 찾아갔다. 그는 말한다. "이제 100세 인생이라는데, 그만큼 외로움의 시간은 더 길어지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 그렇게 혼자 묻고 답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냅니다.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외로움이 저에게 가르쳐준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글자 수 930자.

남산 둘레길에서 시각장애인 몇 분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어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이 설치되어서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게 되었더군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녹내장 선고를 받은 나도 언젠가는 발바닥의 감각을 이용해 남산을 걷는 날이 오겠지요. 시력을 잃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괜찮네요.

내 인생의 위기는 신문 칼럼을 잘못 쓴 일이에요. 그 일이 있고부터 회사를 다니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어요. '저 친구, 그렇게 날뛰더니 한 방에 훅 갔구먼.', '어쩌냐 저 선배, 이제 맛이 갔네.' 온라인에 저를 성토하는 글이 올라올 때도 숨이 막혔지요. '인간아, 왜 사니?' 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 같았거든요.

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망상을 끄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퇴사를 선택하고 SNS 앱을 지우고 블로그도 닫고, 철저하게 외로워지기로 했어요. 고독해지니 비로소 내가 보였어요. '아, 내가 참 불쌍하구나.' 사람들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나를, 나까지 원망하면 너무 가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챙겨주기로 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매일 반복했어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걷고 싶은 길을 걸었어요. 다행이에요. 도서관에 가면 늘 읽고 싶은 책이 있고, 길을 나서면 매일 새로운 풍광이 나를 반겨줬습니다.

외로움이 찾아오면, 반갑다고 해주세요. 이제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겁니다. 다른 사람 눈치 살피고,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느라 나를 잊고 살았는데, 그런 내가 나를 찾아온 겁니다. '이젠 나를 좀 돌봐줘.' 조금은 쓸쓸했고 외롭기도 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수없이 되묻다 보니 훌쩍 지나갔네요.

이제 100세 인생이라는데, 그만큼 외로움의 시간이 더 길어지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모두가 답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김민식, <외로움 수업>, 생각정원, 1만8000원

편집국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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