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미·중 갈등속 美, 21년만에 韓 최대 무역흑자국 부상

업황 악화로 반도체수출 급감
올 넉달간 對美흑자 108억달러
車수출 호조, 中·베트남 제칠듯
전문가 "대중수출 회복 쉽지 않아"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올해 미국이 21년 만에 우리나라 최대 무역흑자국으로 재부상할 전망이다.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은 2003년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고, 지난해에는 베트남이 그 자리를 꿰찼다. 올해 대미(對美) 수출은 최근 자동차 수출 호조에 힘입어 대중(大中)수출을 바짝 추격하면서 지역 수출 1위 자리도 다시 꿰찰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중 갈등 본격화로 주력 수출 품목도 달라지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무역 지도가 격변하고 있다.

17일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은 미국이다. 지난 1~4월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108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처음 우리나라 최대 무역흑자국으로 떠올랐던 베트남(76억200만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2002년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98억달러를 기록해 미국이 우리나라 최대 무역흑자국이었는데 21년 만에 그 자리를 다시 꿰찬 것이다.

◆2002년 韓 최대흑자국 美…자동차·반도체 덕

2002년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흑자국일 당시는 자동차, 반도체, 영상기기, 자동차부품, 가전 등이 모두 호조를 보이던 시절이었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는 저렴하면서 비교적 성능이 좋은 차량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저가 승용차가 잘 팔렸다. 2002년 대미수출 품목을 살펴보면 일등공신 역시 자동차였다. 우리나라는 2002년 미국에 69억4000만달러 자동차를 수출했는데 전년 대비 17.9% 수출이 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PDP, LCD 등 디지털 TV가 나오면서 영상기기 대미 수출은 34.3% 급증하기도 했다.

그러다 1년 뒤인 2003년 우리나라 최대 흑자국 순위는 뒤바뀐다. 당시 미국을 밀어낸 것은 중국이었다. 지난 2003년 대중 무역수지는 132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대미 무역수지가 94억500만달러 흑자로 소폭 뒷걸음친 사이 중국은 우리나라 제1위 교역국으로 올라섰고 이후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을 유지해왔다. 휴대폰 등 무선통신기기·컴퓨터 수출이 대중 수출을 이끌었고, 반도체 대중수출 역시 전년보다 111.5% 급성장하면서 지금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2~2003년 우리나라 수출 1등 품목은 반도체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등 선진국 위주 수출이었지 중국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중국이 전자제품·IT제품 제조가 발전하고 수출이 늘면서 반도체 수출 비중이 증가했고 2005년 대중수출에서 반도체가 1등으로 올라섰다. 그 이후 2010년 초반에는 디스플레이가 대중수출 1등 품목이었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반도체가 1등에 등극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 경기 부진 여파로 반도체가 직격탄을 입으면서 반도체를 등에 업은 우리나라 대중 수출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대중 무역수지는 12억1300만달러로 전년(242억8500만달러) 대비 크게 쪼그라들었고, 올해 4월까지 대중 무역수지는 100억66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수출 호조로 대미 무역수지가 4월까지 108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모양새다.

결국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국 순위 변동이 급격하게 이뤄진 배경에는 반도체 수출이 크게 좌우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대중수출은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수출은 496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4.2% 줄었는데 4월 전체 수출 감소액(82억달러) 중 44억달러가 반도체 수출 감소액이었다. 대중 수출액에서 반도체 비중 역시 2021년 30.8%에서 올 1분기 27.1%로 줄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으로의 수출이 쪼그라들면서 7개월 연속 대중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대 무역 흑자국으로 반짝 떠올랐던 베트남도 글로벌 IT경기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중 갈등으로 베트남이 중국시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지만 반도체 부진이 이어지면서 대베트남 수출도 고꾸라졌다. 4월까지 대베트남 무역수지는 76억2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미국 다음으로 흑자규모가 컸다.

◆반도체 부진·자동차 호조에 뒤바뀐 美·中 순위

반면 4월 자동차 수출은 지난해보다 40% 급증한 61억56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수출액 2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치면서 수출 부진이 지속되는 반면 자동차가 빠르게 그 자리를 메우면서 반도체를 대체할 '제1 수출 효자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은 "현대차·기아 미국 4월 소매 판매는 전년보다 각각 14.9%, 15.5% 증가하면서 해외는 미국 판매가 견인하고 있다"면서 "2분기에는 판매 성수기와 원화 약세가 겹쳐 서프라이즈 실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품목별로 보면 자동차와 반도체, 국가별로는 미국과 중국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이라며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수출 지형도 급변하는 변곡점을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장 실장은 "앞으로 자동차·철강 등의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반도체 부진을 메우는 형국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대미 수출이 확대될 것"이라며 "올해 4월까지 추이를 보면 올해는 21년 만에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대흑자국에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中 리오프닝 지연, 과거 회복 쉽지 않아…수출국 다변화해야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중 수출이 과거만큼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제조업·생산·투자보다는 주로 서비스업, 관광, 숙박, 항공 쪽으로 회복이 되다 보니 우리나라에 미치는 효과도 기대보다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중동, 아세안 등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행 임근형 국제무역팀장은 "최근 반도체 경기를 주시하면서 미·중 갈등 속 수출구조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 경제로 미·중 갈등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중국 리오프닝 기대가 많았으나 내수 중심으로 회복돼 우리나라 수출이 개선되지 않은 데다 중국 산업 구조가 변화,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면서 "중국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세안 다른 나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면서 향후 우리나라 대중수출이 크게 늘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동안 수출시장을 중국·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중동이나 다른 아세안 국가로 눈을 돌리고 수출품목도 다양화해야 한다"면서 "특히 왕실국가인 중동의 경우 개인적인 친분이나 관계가 사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적인 차원에서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 수출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제금융부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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