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미국의 소비자물가에 이어 도매물가 상승폭도 둔화하고 있다. 1년 이상 이어진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긴축 여파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하고 있다는 추가 시그널이 확인됐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Fed가 당장 6월부터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도 한층 힘을 받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 노동부에 따르면 도매물가 격인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보다 2.3% 상승했다. 이는 3월(2.7%) 상승폭보다 둔화한 것으로 2021년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4월 PPI는 전월 대비로도 0.2% 오르는 데 그쳐 월가 전망치(0.3% 상승)를 하회했다.
세부적으로는 음식 및 주류 도매, 외래 진료, 호텔 객실비 부문의 물가는 상승했고, 식품 소매, 증권 중개, 거래 및 투자조언 부문은 하락했다. 특히 서비스 물가가 0.3% 상승해 전체 PPI 상승분의 80%를 차지했다고 노동부는 밝혔다.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 무역서비스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년 대비 3.4% 올랐다. 2월 4.5%, 3월 3.7%에서 둔화한 수치다. 다만 전월 대비 근원 PPI는 0.2% 상승해 3월(0.1%)보다 오름폭이 소폭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도매물가 완화 추세를 최근 원자재가 하락, 공급망 개선 등의 여파로 해석하고 있다. 통상 도매물가 상승분이 향후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수치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됐다는 시그널로도 분석된다. LPL파이낸셜의 퀸시 크로스비 수석글로벌전략가는 "이날 공개된 PPI는 물가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물가 상승추세를 우려하는 시장에게 중요한 지표"라고 평가했다.
전날 공개된 CPI도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며 인플레이션 완화 청신호를 켰다. 4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4.9% 올라 2021년 4월 이후 최소폭 상승을 기록했다. 월가 전문가 전망치(5.0%)는 물론 3월 상승폭(5.0%)도 하회하며 10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갔다.
CPI에 이어 PPI까지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를 재확인한 Fed가 당장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부터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도 지속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6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99%이상 반영하고 있다. 이르면 7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베팅도 절반에 육박한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언한 Fed는 지난해 3월부터 10연속 금리 인상을 통해 미국의 기준금리를 5.0~5.25%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같은 날 Fed가 우려해온 노동시장 과열이 냉각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고용지표도 나왔다. 이날 공개된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21년 10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6만4000건으로 전주 대비 2만2000건 증가했다.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181만 건으로 1만2000건 늘어났다. 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ed의 누적된 긴축, 빅테크와 투자은행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대규모 해고 등의 여파가 서서히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관건은 근원 물가다. 전년 대비로는 둔화하는 추세지만, 전월 대비로는 소폭 올라 여전히 끈적한 근원 물가가 확인되고 있어서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전날 "디스인플레이션과정이 유지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높다"면서도 "노동시장 강세를 고려할 때 (Fed 물가안정목표치인) 2%로 떨어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