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월요일인 27일(현지시간)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셰어스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인수 결정으로 은행주 랠리가 확인된 가운데 보합권에서 혼조 마감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194.55포인트(0.60%) 오른 3만2432.08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6.54포인트(0.16%) 높은 3977.53에 장을 마감했다. 반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55.12포인트(0.47%) 하락한 1만1768.84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이날 은행주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한편, 이번 주 예정된 미 상·하원의 SVB발 은행권 위기 관련 청문회, 금융당국과 대형은행들의 추가 지원 가능성, 연방준비제도(Fed) 당국자들의 연설,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를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 발표 등을 대기하고 있다.
S&P500에서 에너지, 금융, 산업, 소재 등 8개 업종은 상승했고, 기술, 통신, 부동산 등 3개 업종은 하락했다. 특히 지역은행을 비롯한 금융주의 랠리가 두드러졌다. 앞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쉐어가 SVB를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시장 우려를 누그러뜨렸다. 미 당국이 퍼스트리퍼블릭을 비롯한 은행을 대상으로 긴급대출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안을 검토한다는 외신 보도 역시 은행주 반등 배경이 됐다.
인베스코의 브라이언 레비트 글로벌시장전략가는 "정책 입안자들이 최근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며 시장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며 "Fed의 유동성 지원 확대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전 우려를 의미 있게 완화했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는 투자자 메모를 통해 "재무부가 필요시 무보험 예금에 대한 지원책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심각한 은행 스트레스가 다시 발생할 경우 재무부 조치를 배제하지 못하지만, (현재) 조치 가능성은 낮아보인다"고 전했다.
‘제2의 SVB’로 꼽혀온 퍼스트리퍼블릭은 전장 대비 12%가량 뛰었다. 지역은행들의 광범위한 상승세에 힘입어 SPDR S&P지역은행 ETF도 1%가까이 오름세를 나타냈다. 지난주 후반 위기설에 휩싸이며 신용디폴트스와프(CDS)가 급격히 치솟았던 도이체방크는 이날 5%가까이 반등했다. SVB의 새 주인이 된 퍼스트시티즌스는 50%가량 폭등했다. 국제유가가 약 2주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엑손모빌(+2.19%), 셰브런(+1.02%) 등 에너지 관련 주들도 상승했다.
다만 기술주는 약세를 보였다. 구글 알파벳은 2.83%, 메타는 1.54% 떨어졌다. 경제매체 CNBC는 금리 인상 전망이 성장주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며 이러한 약세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자오팡청 최고경영자(CEO) 등을 제소하면서 관련주도 하방압력을 받았다. 코인베이스 글로벌은 7.8% 내려앉았다.
이번 주에는 주요 당국자들의 발언도 대거 예정돼있다. 먼저 28~29일에는 미 상원 은행위원회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최근 SVB 파한 사태 이후 확산한 은행권 위기 등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마이클 바 Fed 금융감독 부의장 등이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리사 쿡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등도 연설에 나선다.
이와 함께 Fed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 미국의 작년 4분기 성장률 확정치 등 경제 지표도 공개된다. PCE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7%, 전월 대비 0.4%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4분기 성장률 확정치는 앞서 1월 공개된 예비치 2.9%(연율), 지난달 공개된 수정치 2.7%에서 추가 하향될 지 관건이다. 세계은행(WB)은 이날 공개된 보고서를 통해 노동 공급 및 생산성 확대 등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2030년까지 세계 경제성장률이 연 2.2%에 그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은행권 위기 우려가 다소 완화하며 이날 시장에서는 Fed의 금리 동결 전망이 전날보다 약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5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53%이상 반영하고 있다. 일주일 전 48%대보다는 높지만, 전날 83%대 대비로는 확연히 낮아졌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46.7%다.
이와 관련 더블라인 캐피탈의 제프리 건들락 CEO는 이날 CNBC 클로징벨에 출연해 "Fed가 항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몇주간 경제데이터가 계속 악화하면서 경기 우려 전망이 쏟아지는 것이 논리적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레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앞서 기자회견에서 연내 금리인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이미 Fed는 인플레이션을 이겼다"며 금리 인하를 꺼리는 것은 "실수"라고 주장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국채 금리는 올랐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3.54%선으로 상승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4%선을 되찾았다.
유가는 은행권 우려가 다소 완화한데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원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급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3.55달러(5.13%) 오른 배럴당 72.8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상승폭은 작년 10월3일 이후 최대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13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