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기자
정부여당이 7년 넘게 소요되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2년6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전국 15개 지역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키로하면서 관련 입법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민의힘 규제개혁추진단은 2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리는 산업단지 입지규제 개선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추진방안'을 공개하고 여론 수렴에 나선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장철순 국토연구원 명예위원은 이 자리에서 평균 7년 정도 걸리는 국내 산단 조성 기간을 4년6개월가량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네거티브존을 적극 활용해 분양 완료기간을 6개월 단축할 수 있다. 네거티브존은 산단에 입주할 수 있는 업종의 제한을 없앤 구역으로, 그동안 산단 입주 업종을 제한하면서 신산업 육성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2020년 5월 도입됐다. 장 명예위원은 "유치업종 제한이 없는 구역을 확대함으로써 산업간 클러스터화 촉진과 분양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개발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산단내 소규모 복합용지를 신설할 수 있도록 허용해 조성기간을 6개월 줄이고, 산단을 조성할 때 전력·가스 등 유틸리티 시설에 대한 계획적인 공급 계획을 마련해 산단 조성기간을 6개월 추가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전에 개발 가능한 후보지를 확보하는 작업을 통해 조성가량을 1년 가량 축소하고, 개발 단계에서 실수요 검증을 강화하면 2년 단축할수 있는 방안도 소개됐다. 산단은 국토이용계획 변경에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적기 공급이 어려운데,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공급 규모나 위치를 미리 지정하면 개발 절차가 줄어들면서 조기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산단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이뤄지는 첫 단계인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실수요 검증을 강화하면 토지매입과 농지협의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 정 위원은 토지 확보 비율 기준을 매입 비율 30% 이상으로 상향하고, 농업진흥지역이 30% 이상 포함하는 방안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같은 규제를 걷어내면 조성기간을 총 4년6개월 가량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토연구원은 국토교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으로, 이날 발표된 내용은 사실상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산단 입지 규제 개선 방안이다. 앞서 정부는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등 전국 15개 지역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여당이 이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홍석준 의원실 관계자는 "국토부와 산자부 등과 협의를 거쳤으며, 대부분이 그동안 업계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이라며 "여야 모두 반도체 산업 육성에 이견이 없는 만큼 조속한 법안 처리로 반도체 클러스터에 적용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산단은 정부가 개발계획을 수립·지정해 고시하면, 실시계획을 수립·승인한 뒤 산업단지를 조성해 분양하는 절차를 거친다. 현재 전국에 1276개의 산단이 지정됐다. 이 중 조성이 완료된 산단은 942개고, 264개 산단은 조성 중이다. 또 28개는 보상을 준비 중이며 41개 산단이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산단은 지정부터 준공까지 평균 7년2개월이 걸렸다. 33개 국가산단의 경우 지정한 뒤 준공까지 15년9개월이나 소요됐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산단은 6년8개월이 걸렸다. 도시첨단단지와 민간산단은 조성기간이 각각 5년2개월과 6년1개월이었다.
이처럼 산단 조성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사전 행정 절차부터 기간에 지체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환경영향평가는 21개월 소요됐는데 오폐수와 송전선로가 인근 지역인 안성시를 통과하면서 안성시가 반발, 지역갈등으로 이어지면서다. 산단 입주기업인 SK가 방류수 수질을 개선하고, SK건설이 안성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방류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상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용인반도체 클러스터는 토지보상 협의기간도 12개월이나 지체됐다. 토지 보상 절차는 부지 선정, 토지 및 지장물 조사, 보상계획공고, 감정평가, 보상 협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2019년 부지 선정 후 주민 대다수가 지장물 조사를 거부하다 2021년 9월부터 조사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12%, 3월 59.9% 보상으로 착공계 제출했고, 지난달 토지보상이 99% 가량 이뤄졌다.
용수공급을 합의하는데는도 18개월이나 걸렸다. 환경영향평가를 체결한 후 사업시행자가 용인시에 용수공급시설 설치 승인을 신청할 때 취수지점을 관할하는 여주시의 상생협력 방안 요청으로 기간이 지체된 탓이다. 이는 경기도가 여주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SK하이닉스가 자사 협력업체를 유치하고, 여주쌀소비촉진 등의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 가동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2019년 부지선정 이후 6년이 지난 2025년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2027년부터 가동될 전망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대만 반도체기업 TSMC가 구마모토 공장을 세울 당시 2021년 10월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6개월만인 2022년 4월 착공에 들어갔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미국 정부가 1996년 부지 선정 및 착공에 들어갔는데 1997년부터 가동됐다. 중국 시안 삼성전자 공장역시 2012년 부지선정과 착공이 발표된 이후 2014년부터 운영됐다. 장 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사전 행정 절차"라면서 "환경영향평가나, 관계부처 협의, 관련 주민의 반발 등이 사실 대부분의 (산단 조성)시간을 소비하는데 이런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만들면 최소 2년은 충분히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상반기 산단 규제 개선을 골자로 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입법은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지역구 이해관계가 걸린 산단 지원에는 여야간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15일 전국 15개 지역에 국가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민간 주도의 55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일부 야당 소속 의원들은 잇따라 환영의 입장을 냈다. 정부가 발표한 국가산업단지는 경기권과 충청권, 호남권, 강원권,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전국 15개 지역에 조성되는데, 특히 충청권에서 대전·천안·청주, 호남권에서 광주·고흥·익산·완주 등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에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을 지역구로 둔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북 익산의 한병도 민주당 의원, 무소속 박완주(천안 을) 의원, 충남 아산을 강훈식 민주당 의원 등이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소개하며 "국회 차원에서 지원책 모색에 즉시 착수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