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우리를 위해 쉼 없이 몸에 좋은 향유와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액을 만들어내는 원기 있고 온화한 수종(樹種)에 대해서 두려워할 것은 전혀 없지만 배울 점은 많다. 이런 나무들과 풍취 있게 어울리면서, 신선하고 조용하며 호젓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햇빛이 너무 지나치기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이렇게 뜨거운 오후에는 노르망디 특유의 "토양"에 들어가 보자. 이곳에서는 키 큰 아름드리 너도밤나무들이 유연하게 자라고 있어, 그 잎사귀들이 얇지만 단단한 제방처럼 빛의 바다를 막아 주고, 숲 속의 어두운 고요 속에서 음악처럼 울리는 빛의 방울 몇 개만을 붙들 뿐이다. 우리의 정신은 바닷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야(山野)에서도 퍼져가는 기쁨을 얻지 못하나,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행복을 맛본다. 뿌리 깊은 나무줄기들로 사방이 에워 쌓인 우리 정신은 나무들처럼 높이 치솟는다.
등을 깔고 누워서 마른 잎사귀들 속으로 고개를 젖히면, 깊은 휴식의 한복판에서 잎새 하나 건들지 않으면서도 맨 꼭대기 가지들까지 상승하는 정신의 민첩한 기쁨을 뒤좇을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부드러운 하늘 가장자리, 높은 가지에서 노래하는 한 마리 새 곁에 앉게 되는 것이다. 여기저기 약간의 햇살이 나무 밑동에 머물고, 때때로 나무들은 그들 가지의 말단 잎사귀들을 꿈꾸는 듯 적시거나 금빛으로 물들인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긴장이 풀려 꼼짝 않고, 어둠 속 행복감에 말이 없다. 가지들의 막대한 봉헌(奉獻) 안에서 고요히 쉬고 있는 우뚝 뻗은 나무들은 이런 자연스럽지만 이상한 자세를 통해 우아한 속삭임으로 우리를 나무의 삶과 공감하도록 이끈다. 이 삶이란 그토록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젊어서, 우리네 삶과 전혀 다르기에 인간 삶의 알려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저장고인 것 같다.
가벼운 바람이 한 순간 그들의 반짝이지만 어두운 부동성을 깨뜨리자, 나무들은 살짝 몸을 떨면서 나무 꼭대기에서 햇빛의 균형을 잡고 나무 밑동에서는 그림자를 다시 배치하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이건수 옮김, 민음사,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