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정부가 공무원들의 내부보고서 초안을 인공지능(AI)에게 맡기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챗(Chat)GPT’와 같은 AI 기술을 공직사회에서 활용할 방법을 찾으라고 촉구하면서다. 다만 입법절차와 보안문제가 엮여있어 실제 적용까지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28일 정부부처 관계자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 16일 ‘챗GPT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를 비공개로 열고 공직사회에서의 AI 기술 사용법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무원들이 보고서 작성 시 AI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고, 도입 제약요인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정부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방안은 공무원들끼리 주고받는 공문의 초안만 AI가 우선 작성하는 시스템이다. 공무원들은 정책을 만들기 전 보고를 위해 국내외 동향파악, 기술·법규 사례, 부작용, 대안, 전문가 의견 등의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는 공식문서뿐 아니라 메모·첨부 형태로 각 부처에 쌓여있는데 이를 데이터로 가공해 AI에게 학습시키면 원하는 주제에 맞게 자동으로 보고서 초안을 만들 수 있다.
행안부에서는 해당 시스템으로 업무처리 속도가 확연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업무 비효율성을 높이는 주범으로 ‘내부 보고’를 꼽아왔다. 참고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방대하고 작성 양식도 까다로운데다 보고 단계도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가 초안을 쓰고 담당 실무자가 수정·보완하는 정도의 역할만 맡는다면 업무부담을 낮출 수 있다.
관련 업무를 준비 중인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게 문서작성이다 보니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다”면서 “사람이 쓰는 초안을 100%라고 한다면 AI가 과연 몇 %까지 만들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행안부가 AI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지시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 신년사를 챗 GPT가 한번 써보게 해서 받아봤다. 정말 훌륭했다”고 말했다. 또 “(챗 GPT를) 잘 연구해서 우리 공무원들이 잘 활용할 수 있게, 그래서 불필요한 데 시간 안 쓰고 정말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행안부에서 잘 주도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장 AI를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공무원들은 보안을 위해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해 사용한다. 대국민 업무를 뺀 내부 일 처리는 모두 보안시스템이 엄격한 내부망을 이용한다. 현재 보안체계로는 초안 작성을 위해 AI 업체에 접근권한을 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민간기업이 내부망을 들여다보게 되면 국가기밀 유출 등 보안사고 우려가 커진다.
국내 AI 기업의 기술력도 담보돼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AI 프로그램은 대부분 해외기업들이 만든 서비스다. 정부는 AI 산업 발전을 목표로 국내기업을 물색하고 있는데, 아직 챗 GPT 만큼의 기능을 제공하는 곳이 없다. 국내기업들이 유사 서비스 제공에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불명확한 상태다. 이날 간담회에도 민간기업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행안부는 챗GPT 활용제고를 위한 추가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행안부 소속 공무원 100여명이 챗GPT 무료 버전을 업무에 쓰고 있고, 상반기 내 시범활용을 끝내고 업무활용법을 담은 가이드라인도 출시할 방침이다. 지난 24일에는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지능정보화책임관 200여명과 협의회를 개최해 ‘챗GPT 등 생성 인공지능(AI)의 다양한 응용과 한계 알아보기’라는 강의를 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