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기자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지난해 1월 롯데케미칼은 배터리 제조업체 스탠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 지분 15% 확보했다. 투자 전 롯데가 눈여겨본 것은 스탠다드에너지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나듐이온 배터리’였다. 이 배터리를 차세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투자의 성과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스탠다드에너지는 올해가 바나듐이온 배터리 상업 판매 원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의 스탠다드에너지 본사를 찾아 김부기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바나듐이온 배터리 양산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대규모 생산을 앞둔 상황"이라며 "대기업을 포함해 많은 대기 수요가 있고 큰 규모로 배터리를 공급하는 협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대전의 대덕테크노밸리에 바나듐이온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한 총 세 곳의 공장을 갖췄다. KAIST와 미국 MIT 연구진이 2013년 8월 설립한 이후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배터리 기술은 성숙되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길다.
이 시간 동안 스탠다드에너지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김 대표는 "바나듐이온 배터리를 처음 만들면서 목표로 한 것은 안전성, 효율, 수명, 친환경성 네 가지였다"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배터리가 안전한 것은 당연하고, 효율도 높아야 하며 소재 거의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대표는 생각했다.
현재 배터리 시장의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와 사뭇 다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잦은 발화 사고로 안전성 문제가 있다. 수명이 짧고 폐기했을 때 환경오염 문제도 생긴다. 바나듐이온 배터리는 물 기반 전해액을 사용해 발화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수명이 길고 소재 재활용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재활용 여부뿐만 아니라 생산과 사용, 폐기까지 배터리 전주기에서 환경 친화적인 기술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경제성을 갖추는 데도 많은 투자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스탠다드에너지의 목표가 ‘리튬이온 배터리 대체’는 아니다. 김 대표는 바나듐이온 배터리와 리튬이온 배터리가 앞으로 시장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는 작고 가벼운 배터리가 필요해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로 쓰인다. 스탠다드에너지가 타깃으로 한 ESS는 용량이 크고 안전하게 저장하는 게 중요하다.
바나듐이온 배터리는 제도권에 들어오기 위한 안전 인증 등의 절차만 남았다. ESS 용도의 배터리는 한국전지산업협회의 단체표준 인증 또는 국가기술표준원의 KC 인증을 획득하고 한국전기설비규정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김 대표는 "연내 결과가 나오면 상업 판매를 위한 계약 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이 배터리 기술을 접목한 ESS가 서울 압구정동에서 가동되는 등 기술 검증은 마쳤다. 김 대표는 "누구나 스탠다드에너지의 배터리 기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초고속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도심 한복판에서 최대 30분 이내 충전이 가능한 전력을 제공한다"고 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향후 전기차 충전소와 연계된 사업 모델도 고민하고 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배터리 소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력 서비스까지 바라보고 있다. ESS에 미리 저장한 전기는 필요할 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살아갈 전기 기반 사회에서 국가 전력망 운영에 기여하고 싶다"며 "대용량으로 전기를 저장하고 이를 보급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에너지 평등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SS에 저장해놓은 전기를 필요한 곳에서 언제든지 쓸 수 있게 되면 전기를 공기처럼 여기는 시대가 오고 전기가 부족해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쓰러지는 이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대전=김철현 기자 kc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