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부애리기자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부애리 기자] 경기도에서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박기왕씨(51)는 지난해 말 사업장 확장에 필요한 자금 약 2억원을 대출받기 위해 은행의 문을 두드리다 방향을 돌렸다. 지난해 들어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진행된 데 따른 영향으로 적용받는 대출금리가 5~6%대까지 치솟아 이자가 부담스러워진 까닭이다. 박씨는 "정책금융기관의 경우 금리도 상대적으로 낮고 한도도 넉넉하다 해서 문의해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수도권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 김기성씨(44)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받았던 정책자금 대출의 원금 상환을 예고하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기존 대출상환액까지 더하면 생활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돼서다. 그는 "거치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연체가 불가피하다"면서 "앞으로도 줄줄이 (다른 대출의) 상환이 돌아올 텐데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계대출에 이어 기업대출까지 얼어붙고 있는 원인으론 향후 이어질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꼽힌다. 지표상 건전성은 유지되고 있으나, 하반기 경기 둔화가 현실화하고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금융지원책이 종료되면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한계기업·차주의 부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커서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부실화를 막기 위한 연착륙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금융기관의 중소기업대출은 15.0% 늘어난 1480조40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 관련 금융지원 정책에 더해 운전자금까지 말라붙으면서 중소법인은 15.7% 늘어난 819조4000억원, 개인사업자는 14.1% 증가한 661조1000억원까지 팽창했다. 대기업대출 역시 14.8% 늘어난 239조2000억원에 달했다.
물론 지표상 국내 기업대출의 건전성은 아직 준수한 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기업대출(원화대출) 연체율은 0.26%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월(0.60%) 대비로도 0.3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지표는 '착시효과'라는 게 금융권 및 당국의 평가다. 대출 잔액이 늘어나면서 분모가 커진 데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정부가 코로나19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영향이 반영됐단 것이다.
기업의 체력도 약화하고 있다. 특히 이는 중소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중소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21년 13.6%에서 지난해 상반기 12.4%로 소폭 둔화했으며, 이자보상배율 취약기업 비중은 2021년 말 기준 48.4%에서 49.7%로 소폭 상승했다. 이자보상배율은 한 기업이 영업으로 거둬들인 이익(영업이익) 중 얼마를 이자 비용으로 지불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금감원이 발표한 '2022년 정기 신용위험평가'에 따르면 2022년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총 185개사였는데 이중 183개 사가 중소기업, 2개 사가 대기업이었다. 대기업은 전년 대비 1개 사 감소했지만, 중소기업은 26개사가 증가해 큰 폭으로 늘었다.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은 지난 2020년 153개, 2021년 157개로 매년 증가세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대출은 마진폭이 크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큰 만큼 은행으로선 올해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라며 "하반기 경기둔화가 본격화되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대출 역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01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3% 늘었다. 물론 자영업자의 연체율도 코로나19 만기연장·이자유예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지난해 3분기 기준 0.19%의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잠재된 부실 규모는 상당한 편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금리 0.5%포인트 상승 ▲서비스업 경기 둔화 ▲정부 금융지원조치 효과 소멸 등을 전제로 자영업자의 부실위험률을 추정한 결과 올해 취약차주의 부실위험률은 최고 19.1%까지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른 부실위험규모도 15조~19조5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응하는 자영업자들의 기초체력도 부실한 편이다. 자영업자대출의 담보물을 살펴보면 부동산 비중이 69.6%로 비자영업자(55.3%) 대비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마저도 환금성이 낮은 주택 외 부동산담보대출 비중(29.2%)이 비자영업자(9.9%)의 3배에 육박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 상황에 빠져든 점을 고려하면 자영업자의 기초체력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은은 "대출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매출 회복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금융지원정책 효과가 점차 소멸할 경우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실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면서 "자영업자대출 부실이 금융시스템 안정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부실 우려가 큰 취약차주에 대한 채무 재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론 ▲금융지원 조치의 단계적 종료 및 만기일시상환 대출의 분할 상환 대출 전환 ▲부동산임대업에 대한 과도한 신용공급 억제 ▲사업성이 우수한 자영업자의 자금난에 대비한 미시적 정책 실현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및 선제적 자본 확충 등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의 연착륙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상반기엔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하반기엔 경기 둔화가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올해는 특히 중소기업대출과 관련한 부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중소기업대출에 대한 롤오버(roll over) 주기를 장기화해 금리 인상기 이자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금리를 낮춰주는 은행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아울러 연내 종료 예정인 코로나19 만기연장·이자유예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좀비기업의 경우 연장에 의미가 없는 만큼 다른 탈출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우량한 기업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는 경우에 한정해 선별적으로 (프로그램) 추가 연장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