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황서율기자
최태원기자
경남 합천군에 거주하는 A씨(66). 이제 면허증을 반납할 나이가 됐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하루 10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저녁 6시가 지나면 끊긴다. 혹시라도 가족들이 밤 늦게 몸이 아플 때 발만 동동 구를까봐 면허증 반납은 꿈도 못 꾸고 있다. A씨는 "면허증을 반납하면 나쁜 일들에 대처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만 앞선다"며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늙어야 면허증 반납을 고려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령운전자의 자진 면허 반납제가 시행된지 5년이 지났지만 노인들은 여전히 면허증 자진 반납을 기피하고 있었다. 이들은 있으나마나한 지원 제도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교통 인프라를 원인으로 꼽았다.
3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2018년 부산시부터 시작한 고령운전자 자진 면허 반납제는 5년째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고령운전자가 스스로 주민센터에 면허증을 가져가면 반납과 함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책이 노인들에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까지 서울시가 면허증을 반납한 고령운전자에게 제공한 지원금은 1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23일 장태용 서울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통과되면서 지원금 상향 기준이 30만원으로 상향됐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30만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장 의원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당장 인센티브 상향은 어렵다"며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추후 예산을 확보해 인센티브가 상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노인 비율이 높은 만큼 지원금을 최고 50만원까지 올린 지방자치단체도 있지만 정작 예산 문제로 면허증 회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지난해부터 면허증 반납 지원금을 기존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이에 힘입어 2021년 256명에 불과하던 반납자 수가 지난해 1~2월에만 276명이 몰렸다. 하지만 예산이 바닥나면서 이후부턴 면허증 반납 접수를 받질 못했다. 지난해 9월 추경을 통해 예산을 추가로 확보했지만 22명만 추가로 신청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동권이다. 운전을 포기하는 순간 노인들은 발이 묶이게 된다. 코로나19와 지방소멸로 인해 경영난을 겪는 운송회사들이 노선 운행을 줄이거나 없애면서 교통인프라는 더욱 나빠졌다.
지난해 4월 전북 남원고속버스터미널은 경영난을 호소하다가 결국 사라졌다. 이외 지역도 마찬가지다. 2020년엔 경북 성주시외버스터미널과 충북 영동시외버스터미널, 2021년엔 전남 영암군버스터미널 업체가 문을 닫았다.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은 지난해 12월31일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다. 고양 화정시외버스터미널도 최근 폐업 의사를 밝혔다.
각 지자체는 노인 이동권을 위해 운송회사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줄어드는 승객 수는 막을 수 없었다. 2021년 기준 시내 및 농어촌버스 이용객 수는 37억1382만명으로 2019년 대비 28% 감소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콜버스, 100원 택시 등 고령자 전용 대중교통들이 있지만 예산 문제로 늘어나기 쉽지 않다"며 "농업지역 지자체들은 대부분 재정상황에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노인 복지 차원에서 인프라 문제를 해결해 면허증 반납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정부 재정이 효율화하는 추세다 보니 고령운전자 면허증 반납에 대한 파생효과까지 생각 못 한 부분이 있다"면서 "그럼에도 교통 인프라 투자는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는 노인의 이동권뿐만 아니라 안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