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고물가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한 가운데 일부 소비자를 중심으로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욜로'나 '플렉스' 등 과시형 소비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명품 립스틱이나 향수가 유행하고 있는 셈이다.
물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을 통해 지난달 11~2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6.1%가 물가 부담으로 최근 명품 소비를 줄였다고 답했다. 이어 의류·패션잡화(25.8%), 전자제품(11.6%) 등이 꼽혔다.
반면 고가의 화장품·향수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이 같은 제품의 인기가 높다.
이는 매출에서도 드러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최초로 향수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 1~10월 향수 매출은 20·30세대에 힘입어 전년동기 대비 40% 신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가의 화장품 또한 여전한 인기를 보인다. CJ올리브영에서 판매되는 프리미엄 화장품은 올해 1~11월 누적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38% 늘었다.
이러한 현상을 '립스틱 효과'라고도 부른다. 이는 1930년 미국의 대공황 시기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았지만, 오히려 립스틱 매출은 크게 증가한 상황을 두고 생긴 단어다. 즉 경제가 불황일수록 외제차나 명품 가방 등에 큰돈을 사용하는 것보다 명품 립스틱 등 작은 소비재를 구매한 뒤 소비자들이 더 큰 만족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고가의 헤어 제품 역시 주목받고 있다. '샴푸계 샤넬'이라 불리는 헤어 전문브랜드 '오리베(Oribe)'는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해 갤러리아 압구정점에서 첫 단독 팝업 매장을 열기도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오리베의 지난 4년간 매출은 360% 신장했고, 같은 기간 온라인 매출은 1036% 급증했다. '오리베'의 대표 제품인 '골드 러스트 샴푸'는 한 병에 20만원대(1000mL 기준)에 달한다.
또 와인과 위스키 시장도 '스몰 럭셔리' 트렌드의 영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당초 와인과 위스키는 고급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코로나19 이후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혼술(혼자 마시는 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전문가는 '욜로' 등 과시형 소비 트렌드가 시들해진 이유가 불확실한 미래와 연관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현재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유행이었기에 '욜로', '플렉스'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며 "그러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현재만 생각하고 큰 소비를 하기에는 불안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