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5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우체국 택배기사 이종현씨(52) 하루가 시작된다. 일터인 경기 지역의 한 우편집중국 정문으로 속속 들어오는 우체국 택배 탑차. 거리는 한산하다. 행인들이 출근 준비를 위해 잠에서 깨어날 무렵, 그곳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새벽 배송을 준비하는 가장 바쁜 시간, 그들의 노동은 이미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날 배송할 택배 물품의 분류. 축구장 2개 면적에 해당하는 우편집중국 1층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물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담당 구역으로 배송할 물품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택배기사들. 이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분류한 물품은 다시 배송 순서에 따라 정리해 차량에 싣는 과정을 거친다.
본격적인 배송업무 전에 거쳐야 하는 준비 작업이지만, 본업보다 더 힘겨운 준비의 시간이다. 준비에만 3~4시간이 소요될 정도다.
이날은 새벽부터 눈발이 휘날렸다. 눈이 오는 날, 새벽 배송 기사들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모든 과정을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 빙판으로 변해 있을 도로 사정을 고려하면 배송 업무 시간은 더 소요될 수밖에 없다. 분류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배송을 시작해야 할당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
이씨는 "겨울에는 무거운 짐이 많다. 옷을 하나 사더라도 무겁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배송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분초를 아껴 살아가는 택배 기사들에게는 식사 시간도 허락되지 않을 때가 있다. 모든 일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말도 있지만, 편안하게 식사하는 장면은 낯설기만 하다.
식사도 잊은 채 일을 해야 하는 이유,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자 아빠이자 엄마이다. 우리네 서민들이 열심히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유, 택배기사들도 다르지 않다.
이 씨는 "밥은 거의 퇴근 후 저녁 한 끼만 먹는 편"이라며 "먹고 나면 시간이 지연되니까 일할 땐 밥 생각을 하기 어렵다"면서 웃어 보였다.
배송이 시작되면 긴장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고객의 전화 문의는 일상이다. 이날도 차량 이동 중에 "배송이 언제 되느냐"는 독촉 전화가 걸려 왔다. 고객이 찾는 물품이 탑차 문 가까이에 있으면 찾기에 수월하지만, 안쪽에 실어 놓은 물품은 헤집고 찾아야만 한다.
이씨는 "배송 동선에 따라 물품을 싣기 때문에 배송 중간에 찾기가 쉽지 않다"며 "상황을 말하면 대부분 이해해주시지만, 화를 내는 고객을 응대할 땐 난처하다"고 털어놨다.
배송지에 도착한 이 날 오전 10시께 이씨는 능숙하게 차량을 세우고 차곡차곡 해당 구역에서 배송해야 할 물품을 꺼내 손수레에 실었다. 이내 손수레를 끌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일사불란하게 배송지로 물품을 배송했다.
배달 과정에서 잠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도 그의 눈과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배달이 끝난 물품은 '배송 완료' 스캔을 하고, 곧바로 다음 배송지 주소를 확인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체국 택배기사들은 이렇게 하루 평균 180~200개의 물품을 배송한다. 기사 한 사람이 1시간에 30~40군데를 배송하는데, 이동시간 등을 고려하면 업무가 대략 마무리되는 오후 5~6시까지 모든 배송을 완료하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포함해 하루 10~12시간가량을 일한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종일 뛰어다니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택배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객들로부터 '고맙다'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을 때 뿌듯하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객의 작은 선의에 힘을 얻는다. 택배기사지만 저도 택배를 이용할 때가 많은 데 그때는 기사님에게 꼭 '고맙다'는 문자를 남긴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