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가짜뉴스·정치실종…이태원 참사 한 달, 달라진 게 없다

책임은 '나몰라라'…구설수 오른 고위직
넘쳐나는 가짜뉴스…사회갈등으로 이어져
명단 두고 싸운 국회…국정조사 난항 관측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여가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비에 대비한 비닐이 덮여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또 다른 참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한 달 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무책임한 모습의 정부와 가짜뉴스, 참사를 악용하는 정치인 등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참사의 개인화…책임지는 이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전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안전관리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는데 아직까지 책임지는 이는 없다. 지난달 29일 참사 당일 경찰은 보고 지연과 인력 부족으로, 참사 관할지역인 용산구의 박희영 청장은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고위직 중 책임지는 사람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없다.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경찰의 치안 사무까지 도맡은 이 장관은 참사가 터진 이후 "소방과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과 소방 인력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등 되레 책임을 회피하는 언행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 12일엔 "누군들 폼나게 사표를 던지고 싶지 않겠냐"는 발언으로 또 다른 논란을 자초했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 책임을 피하려다 엉뚱한 구설에 올랐다. 참사 직후 행안부는 공문을 통해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표기하라고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과의 간담회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이라고 걸린 간담회 화면에 이태원 참사(Itaewon Disaster)가 아닌 사고를 뜻하는 'Incident'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일선 경찰들에게 책임을 미룬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소환 조사 소식은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리지 않는다. 그 사이 핼러윈 안전관리 정보보고서를 삭제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던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선 경찰들은 '꼬리 자르기'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기가 밑바닥이다.

넘치는 가짜뉴스…더 벌어지는 갈등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국민은 다른 데서 책임자를 찾는 분위기다.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졌다. 수사 초기 참사를 유발한 사람으로 '토끼머리띠' 남성이 지목됐다. 참사 당일 인파를 밀었다는 의혹이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토끼머리띠 남성을 소환 조사했지만 참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결론냈다.

그러자 '각시탈'을 쓴 남성 2명이 아보카도 오일을 흘려 사람들이 미끄러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수본은 지난 7일 오일이 아니라 위스키이며, 의혹 영상이 찍힌 곳도 참사 현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지난 12일 이들을 불러 조사했고 무혐의로 판단했다.

가짜뉴스로 돈벌이를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유튜브에선 '유명 방송진행자(BJ)가 이태원 방문해 사람 갑자기 몰렸다', '우파 또는 좌파 세력이 인파를 밀었다', '특정 지역 출신 경찰이 기획한 참사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들이 난무하다. 앞서 언급한 토끼머리띠나 각시탈 관련 영상 조회수도 엄청났다.

이같은 가짜뉴스는 유명인의 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됐고 사회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지난 2일 방송을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땐 북한이 올라탔나 안 탔나 조사할 필요도 없다"며 "이태원 참사에 (북한의) 지령이 내려온 건 기정사실이다. 빨리 이 내용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애도·수습은 뒷전…실종된 정치

국민의힘 주호영·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에 대한 여야 합의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사회가 혼란스러운데 정치는 실종 상태다. 정치인들은 참사자 명단 공개 등 애도와 거리가 먼 사안에 열을 올렸다. 명단공개 논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급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9일 이 대표는 당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를 향해 참사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 공개를 요구했다. 정부가 명단과 사진 공개를 반대해 시민들의 추모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지난 14일 시민언론단체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고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유가족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이 대표를 몰아붙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친 더불어민주당 성향 온라인 매체가 명단을 공개했다"며 "그들의 1차 목적은 이재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이 점점 악화되자 더불어민주당은 "명단 공개는 이 대표의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다.

참사 원인을 밝혀낼 국정조사는 참사 발생 25일이 지나서야 여야가 합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난항이 예상된다. 국정조사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상민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를 추진키로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정치인, 시민할 것 없이 선동하고 있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태원 참사는 한 달 전에 발생했지만 다른 종류의 참사가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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