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돈기자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저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는 크게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장서정 자란다 대표는 소위 ‘레몬마켓(쓸모없는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치부되던 키즈-에듀 테크 산업에서 당당히 1인 창업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선택에 후회가 없다. 장 대표는 “여성 CEO에게 가지는 정형적인 외부의 시선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오히려 여성이어서 자란다의 미션을 좀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여성 CEO로서 느꼈던 유일한 어려움은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여성 CEO가 많지 않다는 것뿐”이라며 “지금도 항상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세대, 같은 고민, 비슷한 시선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인사이트도 발견하고, 서로에게 위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불쑥불쑥 마주하게 되는 막막한 상황에, 저보다 먼저 여정을 시작하신 분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싶기도 한데, 아직 우리나라의 여성 CEO 비율은 너무 낮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평소에 ‘유리천장’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그동안은 스스로 유리천장을 겪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거기까지 닿아본 적조차 없어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장 대표는 엄마가 되면서 직면한 육아 고민을 직접 해결하고자 2016년 자란다를 설립했다. 4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대화하고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장 대표는 맘카페에서 대학생 돌봄 선생님을 만나면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모토로라에서 사용자경험(UX)·사용자환경(UI) 디자인 업무로 10년, 제일기획에서 디지털사업전략 담당으로 2년간 근무한 경력을 토대로 ‘놀이시터’ 개념을 도입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부모의 부담을 덜고 육아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키즈-에듀 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지 오래다. 지난해 미국 내 키즈-에듀 테크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약 1조6500억 원(14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육아 시장 규모는 1300억달러로 추산된다.
그런데 국내 유아·교육 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심각했다. 자란다는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공유되는 정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돌봄 및 육아 정보를 보편화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다. 자란다는 단순히 교사와 엄마의 매칭 서비스가 아니라 아이 성장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이다. 그 결과 부모와 자녀 돌봄·교육을 도와줄 시터를 매칭해 주는 자란다는 유아동 방문교사 시장에선 매칭 점유율 1위 플랫폼으로 올라섰다.
아울러 엄마들의 입소문에만 의존해야 했던 기존 육아·교육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와 함께 올해 4월에는 31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주도하고,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와 아이비벤처스와 한국산업은행과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했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3배 매출 성장을 달성했고, 누적 매출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자란다 서비스를 임직원 복지에 도입하는 기업도 1000곳 이상이고, 2022년까지 전국 단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가입 교사 수는 20만명, 영어·수학이나 예체능 교사도 2500명에 달한다.
장 대표는 자란다가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 낙후됐던 유아·교육 시장의 현실과 부모들의 의식 변화를 꼽았다. 장 대표는 “과거에는 육아와 교육 시장이 굉장히 폐쇄적이고 암담했다”면서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시장의 불균형이 심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란다를 설립하던 당시만 해도 ‘온라인에서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면서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고, 공유 경제가 주목을 받는 와중에도 유독 육아와 교육 시장만큼은 보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내 아이만 좋다면 외부, 혹은 전문가에게 교육을 맡기는 ‘아웃소싱’이 일반화됐다”면서 “선생님의 성향, 특기, 활동 데이터를 파악하고 아이 성향에 최대한 알맞은 선생님을 추천하는 자란다는 서비스가 달라진 부모들의 ‘니즈’를 충족시킨 셈”이라고 덧붙였다.
장 대표의 시선은 이제 ‘디맨더(수요자)’를 넘어 ‘서플라이어(공급자)’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수요자인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공급자인 교육기관, 선생님들 측면에서 시스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
장 대표는 “아직 육아·교육 시장에서는 공급자들을 위한 마땅한 네트워크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대부분 인적 네트워크 위주로 이뤄져 있고, 데이터나 레퍼런스가 쌓이지 않으면서 데이터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란다를 운영해오면서 느낀 것은 공급자 측면에서의 고충도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면서 “결국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페인 포인트’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란다 선생님은 방문한 아이를 대상으로 일종의 관찰일지를 작성하고, 그 내용을 자란다의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한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이의 관심이나 성향을 분석해서 어떤 선생님이 적합한지 어떤 돌봄과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이 자란다의 시스템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프로세싱을 결합한 방식인데, 아이한테 적합한 선생님을 찾아서 알맞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자란다에 선생님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신원 인증, 아동학대 범죄 전력 조회, 성향 검사, 활동 오리엔테이션, 학력인증, 성범죄 전력 조회, 인터뷰, 자격인증 등 총 8가지의 엄격한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선생님의 성향, 특기, 활동 데이터를 파악하고 아이 성향에 최대한 알맞은 선생님이 추천된다. 수요자인 아이와 부모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는 충분한 셈이다.
장 대표는 “자란다의 차별점은 선생님한테 아이가 맞추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아이한테 맞춰주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도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급자인 선생님 입장에서는 수요자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그 성향이 어떤지 알 길이 없다”면서 “자란다는 매칭 플랫폼으로서 그러한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 대표는 “공급자인 선생님들의 커리어를 자란다가 함께 설계를 해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선생님들 역시 단순한 아르바이트에서 끝나지 않고, 경험치를 쌓아 성장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출산 위기도 장 대표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 0세부터 12세 인구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매년 평균 3.97% 이상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저출생 위기 국가다. 자란다의 주 고객층인 영유아와 초등학생 시장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워줄 육아노동력의 감소세가 더 빠른 것이 현실이다. 장 대표는 “출생률이 떨어져서 아이 숫자 자체는 줄었지만, 교육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치는 훨씬 높아졌다”면서 “다양성과 개인 맞춤형 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호재”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장 대표는 ‘커스터마이징’을 강조했다. 장 대표는 “요즘 스마트폰만 있으면 OTT나 새벽 배송 등 개인의 삶에 맞춘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해졌다”면서 “부모, 그리고 아이의 삶도 마찬가지로 몇 가지 선택지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는 저마다 다르게 자라야 한다는 장 대표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장 대표는 다가올 미래에 자란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그는 “시중에 있는 여러 질 좋은 육아 서비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로 발전하길 바란다”면서 “부모가 되더라도 삶이 크게 바뀌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없는 세상이 자란다가 그리는 미래”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장 대표는 “개인적으로 저와 자란다의 행보가 많은 여성 창업자, 여성 CEO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향계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