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기자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전국 곳곳에서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데이터센터 설립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세계 시장 큰 손들은 한국을 아시아 지역 데이터센터 기지로 인식하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산업이 하이퍼스케일(10만대 이상 서버를 운영)급으로 확대되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3월 '전세계 데이터센터계 양대산맥' 에퀴닉스가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손잡고 서울에 하이퍼스케일(10만대 이상 서버를 운영)급 데이터센터 구축을 공식화했다. IT업계 전유물로 여겨졌던 데이터센터가 부동산 유망 투자처로 주목을 받으면서 재무적투자자(FI)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데이터센터 리츠 전문기업인 에퀴닉스와 GIC는 5억2500만달러를 들여 합작법인(JV)을 세우고 2023년과 2024년 데이터센터 2곳을 오픈한다. 2곳에서만 45㎿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캐나다 최대 연기금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한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퍼시픽자산운용과 손을 잡았다. 용인 죽전에 축구장 약 14배 크기인 연면적 9만9070㎡ 규모로 초거대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수전용량은 100㎿에 달한다. GS건설은 영국계 사모펀드 액티스, 파빌리온 자산운용과 에포크PFV를 설립, 2445억원을 들여 지하 3층~지상 8층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퓨어데이터센터그룹은 2021년 12월 한국을 포함한 아태지역 확장을 위해 아태지역 물류 부동산 전문기업 로고스와 협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구축 계획은 나왔지만 실제 건립까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다수 프로젝트가 아직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혐오시설이라는 해묵은 오해로 인해 투자지 선정에 애를 먹고 있지만 막대한 해외 자본이 국내 시장에 투자하고 여기에 글로벌 기업들의 서버들이 입주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데이터센터 수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올해 6월 기준 146개소(1742㎿)가 있으며 2029년까지 한전에 전기사용예정통지를 신청한 수요는 466개소(3만2263㎿)로 파악된다. 국내외 사업자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내외 사업자를 별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만, 해외 수요 역시 이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자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2021년까지 주요 타깃이 유럽이었다면 2022년부터 아태지역의 확장이 두드러질 것"이라며 "에퀴닉스와 디지털리얼티 모두 아시아를 유망시장으로 제시하며 공격적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데이터센터 허브로 주목받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변화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의 '2022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태지역에서 네 번째로 시장 규모가 큰 도시다. 경쟁 지역인 일본 도쿄나 오사카, 중국 상하이·베이징보다는 높지만, 글로벌 전체 순위로는 10위권 밖이다. 당초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나라의 약점으로 여겨졌지만 일본 지진 가능성이나 중국 정부의 검열 위험보다 낫다는 인식 변화에 힘입어 한국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로컬 수요가 풍족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문재인 전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디지털 뉴딜' 정책과 함께 한국 기업들의 클라우드 전환 흐름 속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더 많은 기업 고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국내 통신사나 IT서비스업체의 데이터센터를 상면임대(코로케이션) 방식으로 사용한다. '2022 글로벌 기술 동향 조사'에 따르면, 국내 IT 선도기업 중 58%는 더 많은 비즈니스 기능을 클라우드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60%는 '더 많은 비즈니스 중요 애플리케이션을 클라우드로 이전할 계획'이며, 절반 가량(47%)은 '보안 기능을 클라우드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차별화 요인은 높은 전력품질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력 단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산업용 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대비 83% 수준에 불과하다. 호당정전시간 역시 한국이 8.9분에 불과해 미국(47.3분), 영국(38.4분), 독일(10.7분)보다 짧아 에너지 수급이 안정적이다. 외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가을·겨울 시즌 IDC 운영에 필수 요건인 냉각수가 상대적으로 적게 쓰인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일각에선 무조건적인 해외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에너지 수급 계획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서울시가 집계한 에너지다소비건물 상위 10곳 중 3곳이 IDC로, KT 목동IDC1(2위), 가산IDC(3위), KT 목동IDC2(7위) 등이 포함됐다. 온실가스 배출량(tCO2Eq.) 총량은 1위인 서울대보다 적지만 난방면적당 온실가스 배출량(tCO2Eq./㎡)으로 보면 KT목동 IDC1이 서울대의 90배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적 매력도 측면에서는 투자 유치가 긍정적이지만 에너지 공급 문제 등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짰을 때 데이터센터에 대한 고민은 빠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