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공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지난달 현대오일뱅크가 3600억원 규모의 CDU(상압증류공정)·VDU(감압증류공정) 설비 신규투자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밝힌 이유다. CDU·VDU는 원유를 끓여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설비다. 현대오일뱅크는 2019년 5월 해당 설비에 대한 신설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원자잿값과 고금리 등을 이유로 투자를 철회하거나 보류한 사례들은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6월 4조3000억원 규모의 청주 신규 반도체 공장(M17) 증설 투자를 보류하기도 했고 한화솔루션도 지난달 1600억원 규모의 질산유도품(DNT·가구 내장재 등에 쓰이는 폴리우레탄 원료)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24일 아시아경제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으로 국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제경영환경 조사에 따르면, '연초 대비 올해 실적 전망치를 하향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하향한 이유'에 대해 응답기업(33개)의 60.6%가 '환율 및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생산비용 증가'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주요국 긴축정책에 따른 글로벌 수요 부진' (21.2%), '글로벌 공급망 훼손에 따른 생산 차질' (15.2%) 등이 뒤를 이었다. 업종별 하향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 대부분의 업종에서 '환율 및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생산비용 증가'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고환율 기조가 더해지면서 기업들은 더욱 팍팍한 경영환경에 놓였다. '환율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원화 약세) 시 영향'에 대한 조사 결과, ‘원자재 수입비용 증가로 이익 감소’가 38.0%의 응답률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해외 시장 가격경쟁력 개선으로 이익 증가' (27.0%), ‘해외 채권 원화평가 가치 상승으로 재무구조 개선’ (19.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수출기업이 많은 국내 산업계에서는 환율 상승 시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원화 표시 매출액이 늘어난다'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환율 수혜를 상쇄하거나 혹은 이익 훼손에 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자본시장 연구원이 지난 17일 펴낸 '국내 인플레이션 결정요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의 60%가 글로벌 요인인 원자재 가격 상승(40%)과 공급망 차질(20%)에서 유발됐으며, 국내 수요압력의 비중은 1% 수준으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근혁·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국 물가 상승세가 확대되며 경제주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번 인플레이션은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등 글로벌 요인이 주요 동인으로 지목된다"며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수요압력이 물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 소비가 아직 구조적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