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시험 문제 돈 주고 사 해고된 농어촌공사 직원… 대법 '임금 상승분 반환 여부 실질적 업무 차이가 기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승진이 무효가 된 직원이 그동안 받은 임금 상승분을 반환해야 할지 여부는 승진 전후 수행한 업무에 실직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승진한 뒤 이전 직급과 실질적 차이가 있는 업무를 수행했다면 제공한 근로의 대가로 상승된 임금을 지급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단지 직급이 올랐다는 이유로 임금이 상승한 경우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것이기 때문에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24명의 전 공사 직원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판단에는 부당이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농어촌공사 소속 법인에서 근무하던 A씨 등은 2003∼2011년 공사가 시행한 승진시험에 합격해 각각 5급 내지 3급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2013년 공사가 승진시험의 출제와 채점을 맡긴 외부업체에 일부 직원이 돈을 주고 사전에 시험문제와 정답을 제공받아 승진시험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 1월 경찰은 모두 62명의 직원이 이 같은 비리에 연루됐다는 수사결과를 공사에 통보했다.

공사가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의 승진을 취소한 뒤 해고하자, 해고된 직원들은 공사의 승진 취소 및 해고의 효력을 소송으로 다퉜지만 법원은 공사의 조치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남은 문제는 돈을 주고 시험문제와 정답을 미리 구해 승진시험에 합격한 뒤 이들이 받은 임금 상승분을 회사에 돌려줘야 할지였다.

공사는 승진이 무효이기 때문에 당연히 승진에 따라 상승된 임금은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으로써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고된 직원들은 승진 발령이 무효였다고 해도 승진 후 해고되기 전까지 자신들은 승진한 직급에 상응하는 근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동안 받은 임금 상승분은 부당이득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충남의 한 지사에서 기사직으로 근무하다가 2006년 승진시험에 합격, 2007년부터 5급으로 근무한 B씨의 경우 앞서 법원에서 승진 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사의 승진 취소와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공사의 부당이득반환 청구는 이유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1심과 2심 법원은 이들 해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 등에 대한 공사의 승진 취소는 원래 처음부터 승진 발령이 무효였음을 통지해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할 뿐, A씨 등은 처음부터 승진 발령에 따른 3급 또는 5급 직원의 신분을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이들 재판부는 "비록 피고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해 이 사건 각 승진 발령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피고들이 3급 또는 5급 직원으로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원고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은 이상, 피고들이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의 재산으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그로 인해 원고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공사에게 임금 상승분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B씨의 경우 법원에서 공사의 승진 취소와 해고가 모두 무효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만큼, 승진 발령이 무효임을 전제로 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고들이 해고될 당시 공사는 업무의 중요도, 난이도 등을 고려해 3급(차장), 4급(과장 또는 대리), 5급으로 직원들의 직위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직무금을 차등 지급했다.

한편 공사의 연봉제규정은 공사 직원의 기본연봉을 연봉재산정사유 발생 이전 기본연봉에 표준가산급, 임금교섭에 따라 증감하는 금액, 직무급을 합산해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또 직원이 상위 직급으로 승진한 때에는 발령일 직전에 지급받던 기본연봉에 승진한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과 승진가산급을 더하도록 정했다.

표준가산급은 직원이 1년 근속할 때마다 가산되는 금원으로, 직급별 대표 표준가산급은 3급 66만원, 4급 61만2000원, 5급 45만6000원, 6급 40만8000원이었다.

'승진가산급'은 직원이 승진할 때마다 기본연봉에 일정 비율을 곱하거나 정액으로 가산되는 금원으로 2013년 12월 31일 이전 4급 승진자가 3급으로 승진하는 경우 기본연봉 가산율은 10%였다.

피고들은 각각 3급 내지 5급으로 승진한 뒤 승진이 취소될 떼까지 공사로부터 승진에 따른 표준가산급 상승분 및 승진가산급과 이에 기초해 산정된 기준급, 연차수당, 인센티브 상승분 및 직무급 등을 받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고의 연봉제규정 내용에 따르면 표준가산급이란 직원이 1년 근속할 때마다 1년 근속한 자체에 대한 기여를 고려해 가산되는 임금이다"라며 "만약 피고들이 승급했음에도 직급에 따라 수행한 업무가 종전 직급에서 수행한 업무와 차이가 없다면, 피고들은 표준가산급과 관련해 단지 승진으로 직급이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급여가 상승한 것이 되고, 이는 승진가산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피고들에 대한 승진이 중대한 하자로 취소돼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 사건의 경우 피고들은 승진 전의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을 받아야 하고, 승진가산급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피고들이 승진 후 받은 이 사건 급여상승분(표준가산급 상승분 및 승진가산급과 이에 기초해 산정된 기준급, 연차수당, 인센티브 상승분)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부당이득으로서 원고에게 반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피고들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른 업무에 구분이 있는지, 피고들이 승진 후 종전 직급에서 수행했던 업무와 구분되는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제공한 근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살핀 다음, 그에 따라 이 사건 급여상승분이 부당이득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이 사건 급여상승분은 승진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데에 대한 대가로 지급됐으므로 피고들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보아 원고가 이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부당이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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