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 가득한 안세영의 발
악조건 속에서도 피땀 흘린 흔적
2024 파리올림픽에서 28년 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 선수의 물집 가득한 발바닥 사진이 '세계 1위' 왕관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안세영의 발 사진이 공개된 것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케케묵은 규정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지만, 불편한 신발을 신고서도 최선을 다했던 안세영의 노력이 재조명되는 모습이다.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각 분야의 노력 끝판왕들을 들여다봤다.
물집 가득한 안세영의 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세영의 다친 발 사진을 띄우며 "신발을 왜 안 바꿔줬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선수) 본인은 신발 때문에 (물집과 염증 등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며 "선수가 신발 교체를 요청했는데 규정이 그렇게 돼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어른들의 한심한 처신이 이해가 안 된다"고 협회를 비판했다.
사진 속 안세영의 발은 상처투성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 후원 용품을 강제로 썼던 탓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등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올림픽 여자 단식 종목에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안세영은 협회를 향해 국가대표 선발과 후원·계약 관련 규정개선 등을 요구한 상황. 특히 협회가 지정한 후원사의 물품만 사용하도록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안세영의 문제제기와 관련 후원 계약과 출전 제한 규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라켓, 신발처럼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까지 후원사 물품 사용을 예외 없이 강제하는 경우는 올림픽·아시안게임 종목 가운데 배드민턴과 복싱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처투성이 손과 발…한계 극복 위한 '영광의 상처'
한국 클라이밍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자인의 손과 발 역시 영광의 상처로 가득하다. 클라이밍은 손과 발의 힘으로 홀드(암벽에 돌출된 부)을 잡아야 하는데,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선 본인 발사이즈보다 작은 암벽화를 맨발로 착용해야 하는 데다 신발이 앞으로 굽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발에 무리가기 십상이다. 홀드가 거칠어 손에 물집이 잡히는 경우도 많다.
김자인은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20㎜나 작은 205㎜를 신으며 운동을 하다 보니 발이 성하지 않다. 작은 신체 조건(153㎝)을 극복하기 위해 점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손은 굳은살과 물집으로 가득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울퉁불퉁한 상처투성이 발 사진도 유명하다. 사진을 보면 강 단장의 발톱은 부러지고 굳은살이 생긴 변형된 모습인데, 현역시절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거듭나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한 영향이다. 발레를 향한 그의 열정이 발 사진에서 그대로 묻어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큰 화제가 됐다.
세계 곳곳에도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도전하고 영광의 상처 남기는 스포츠 선수들이 많다. 사이클 선수 파베우 폴랸스키(Pawel Poljanski)는 2017년 투르 드 프랑스를 완주한 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최종 성적 75위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허벅지 사진을 공개해 시선을 끌었다.
그의 허벅지는 뜨거운 햇볕에 그을리고 핏줄이 서 있는 모습으로, 극한의 고통을 인내한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대회가 진행된 18일 동안 2829km를 내달렸다. 당시 CNN은 "투르드프랑스가 얼마나 힘든지 의심스럽다면, 파베우 폴랴인스키의 다리를 보면 알 수 있다"며 그의 노력을 치하하기도 했다.
중국에는 가난한 탓에 의족 대신 농구공을 끼우고 생활하다 수영선수가 된 중국의 첸홍얀이 있다. 중국 윈난성의 출신의 첸홍얀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휠체어를 살 형편이 안 됐다. 첸홍얀의 할아버지는 농구공을 의족으로 만들었고, 첸홍양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농구공 소녀'라고 불렸다. 이후 수영선수가 된 그는 2016 리우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2022 항저우 아시안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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