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기자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청년들이 ‘무업(無業)’ 기간에 장기간 고립되며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 ‘백수’들이 모여있는 회사 ‘니트컴퍼니’를 운영하는 비영리스타트업 ‘니트생활자’의 박은미, 전성신 공동대표가 입을 모아 한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백수는 아니었다.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칠대로 지쳤을 뿐이다.
박 대표는 “항상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회사생활을 이어가려고 반복했다”라며 “2019년 마지막 회사생활 이후 더 이상 무언가를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낭떠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0년 정도 조직생활을 하면서 소진이 돼 다시 취직 전선에 뛰어들어 자신을 홍보하고, 어딘가 소속돼 일을 하는 패턴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며 “내 자신에게 쉬는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고, 취업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외롭고 고립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많았다. 바늘구멍인 취업 문을 두고 구직 의지마저 잃어가며 일상이 무너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무업’ 기간 동안 사회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더 이상 기존 조직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들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무직 청년들이 연대하고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 ‘니트생활자’다.
니트생활자가 운영하는 주력 프로그램은 ‘니트컴퍼니’다. 백수들을 위한 일종의 ‘회사 놀이’다. 100일 동안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속감을 느끼며 자존감과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나름의 체계도 갖췄다. 입사 자격은 무직 상태인 만 39세 이하 청년이다. 입사지원서도 써야 한다. 백수 경력이 길수록 더욱 인정받는다. 면접 과정도 있다. 다만 통상적인 입사 면접과는 정 반대다. 회사 구성원들이 스스로 소개를 하고 면접자는 질문을 쏟아낸다. 회사를 면접보고 마음에 들면 입사하는 식이다.
회사생활도 일정한 시간표가 있다. 우선 출·퇴근 도장을 찍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모인 온라인 채팅방에 아침 9시에 출근했다고 보고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한다고 밝혀야 한다. 박 대표는 “100일은 생각보다 긴 기간이라 첫 1주일 정도는 다들 큰 의욕을 보이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고립이 심했거나 우울했던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이들에게 압박하기 보단 더 편안하게 독려하면서 기운을 내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주간회의도 있고 사내 동아리 활동도 있다. 소그룹 회의와 각종 단체 야외활동도 진행된다. 100일이 지나면 강제로 퇴사하게 된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셈이다. 나름 빡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체계지만 모두들 즐겁게 참여한다. 사업목표가 있다거나 실적 달성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업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다. 무엇이든 좋다. 강아지 산책시키기, 앵무새 훈련시키기 등부터 그림 그리기, 시(詩) 필사 등 하지 못했던,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스스로 정하고 매일 반복한다. 사훈도 ‘뭐라도 되겠지’인 이유다.
박 대표는 “백수 기간에는 모든 것을 알아서,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상을 루틴하게 만드는 것이 어렵다”라며 “양치질로 하루를 시작한다든지, 하루에 꼭 오천보를 걷는다든지 사소한 행동들을 통해 일상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단순히 취업준비생들이 진행하는 취업스터디와 무엇이 다르냐는 반문도 나온다. 온라인 채팅방에 기상 보고를 하고 무엇을 했는지 서로 ‘인증’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반박했다. 취업스터디는 어쨌든 내부에서도 경쟁이 이어지고 자신의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니트컴퍼니는 취업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며 “니트컴퍼니 프로그램이 끝나도 무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활동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를 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이 위안을 얻는 것도 이 지점이다. 전 대표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해 토익점수도 만들고 스터디도 하는 과정에서도 공동체성이나 유대감 생길 수 있겠지만 이것보다 사람들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라며 “참가자들은 왜 백수인지 설명하고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다른 사람들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무업 청년들은 어딜 가도 비용도 부담이 되고 그곳에서 내가 누군지 설명하는 것도 반복되면서 갈수록 위축된다”며 “저희는 이런 분들이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자신 그대로를 되찾을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니트컴퍼니는 지난달까지 12번 운영됐다. 광주, 부산, 경기도 화성 등 여러 ‘지점’도 생겼다. 니트컴퍼니 ‘출신’들은 900명에 달하게 됐다. 처음에는 백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의미에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을 찾는 이들이 입소문을 타고 늘어나면서 입사를 위해 1년씩 대기하는 이들도 생길 정도다.
찾는 이들도 다양해졌다. 박 대표는 “무업기간에 있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었다”라며 “10년씩 고립된 분들도 찾아오고 프리랜서나 기자 출신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여러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맞춰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 오래 고립된 이들이 물리적으로 주2회 출퇴근을 경험하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니트오피스’가 대표적이다. 또한 취업이 아니라 다른 진로를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니트인베스트’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소액의 비용을 지원하고 분야별 전문가와 연계해주는 식이다.
니트생활자는 단순히 백수들을 달래고 위로하는 정류장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가 뿌리내리길 바라고 있다. 원하는 일, 새로운 일로도 먹고 살 수 있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떄문에 니트컴퍼니는 참여한다고 어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지도, 얘기하지도 않는다. 박 대표는 “100일 동안 자기만의 시간 갖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이제는 소속이 없이 살아갈 힘을 가졌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훌륭한 사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에서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것, 이런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이 같은 문화가 자리 잡으면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전 대표는 “무업 청년들이 쓰레기를 줍거나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등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일들도 결국 돌봄 영역에서는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라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건데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또한 “한 직장에서 수십년 일하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만큼 이 같은 공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세대 젊은이에게는 불시에 찾아오는 일이기도 하다”라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알거나 선택권이 있으면 사회 전체에도 보탬이 되는 만큼 청년들이 자책하고 혼자 노력하다 무기력함에 빠지는 데 힘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은미, 전성신 공동대표 ▲2019년 니트생활자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