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40주년]승승장구하던 대기업 떠나 한국의 스필버그로…'인생을 더 아끼세요'

40년 영화인생 배창호 감독 인터뷰
다섯살 때 본 영화 '길' 강렬한 경험, 스물아홉살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
잘나가던 무역회사 사표…이장호 감독 조감독으로 영화계 입문
‘젊은 남자’로 스크린 데뷔한 이정재, 기대 이상 연출 잘 해
데뷔 40주년 기념 특별전 진행, 개막작 '꼬방동네 사람들' 등 7편 2주간 상영
최근 대담집 ‘배창호의 영화의 길’ 출간, 차기작 예수 그리스도 삶 그릴 예정

배창호 감독이 12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영화는 인생을 꾸리는 수단입니다. 영화보다는 인생을 더 아껴야죠.”

40년 영화 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배창호 감독은 영화 이야기에 앞서 인생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서른 살,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했을 때 그는 충무로의 기린아였다. 이후 ‘적도의 꽃’,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의 연이은 성공으로 ‘한국의 스필버그’라 불리며 흥행사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는 들뜨기보다는 늘 현실에 발 딛고 서서 영화와 세상을 관조했다. 지금도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꿈꾸는 그는 영화 같은 인생을 오늘도 걷고 있다. 배 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 같은 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감은?

▲첫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을 촬영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흐른 걸 보면 점프컷(하나의 연속된 샷에서 액션이 시간에 맞춰 이동한 것처럼 보여주는 편집 기술)을 한 기분이 든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가난한 삶보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외로움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동철 작가의 자전소설인 동명의 작품에서 생생한 천막촌 사람들의 삶을 마주했고 기획성이 있다고 생각해 연출에 나섰다.

배창호 감독이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은 영화 '러브스토리' 현장에서의 배 감독.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경영학도를 거쳐 대기업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다섯 살 때, 영화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따라간 극장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봤다. 어떤 장면들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었고, 이후 줄곧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 경영학과에 진학한 것은 은행원이었던 부친의 권유도 있었지만, 꼭 영화과에 가지 않더라도 감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대학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며 최인호 작가를 알게 됐고 그 인연으로 이장호 감독님을 뵐 수 있었다. 졸업 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했지만, 영화에 대한 꿈은 더욱 커졌고, 직접 8㎜ 카메라를 구입해 16분 분량의 단편영화를 촬영하고 연출했다.

-상사 재직 시절 케냐 지사장으로 큰 성과도 올리며 승승장구했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은 아름다웠지만, 영화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시 나이로비에 극장이 많이 있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 등 다양한 걸작을 보는 한편 틈날 때마다 8㎜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하며 영화에 대한 마음을 달랬다. 얼마 뒤 이장호 감독님으로부터 활동 재개 소식이 전해졌고 곧장 한국에 사직서를 텔렉스로 보냈다. 회사에서는 재고를 권유했지만 나는 그 즉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배창호 감독이 12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데뷔 후 연이은 작품 흥행에는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 못지않게 연출력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사랑했지만, 그보다 인생을 더 아끼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데뷔작 준비 당시 이 작품을 만들어 보고 연출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당시 관객들로부터 인정받았고 이후 총 18편의 작품을 연출할 수 있었다. 감독은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업주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연이은 흥행으로 자만심에 빠져있을 때 연출했던 ‘고래사냥2’는 오랫동안 실패작이라 생각했다.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작품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너무 촉박했었다. 판단이 빨랐던 만큼 놓친 부분이 나중에 많이 보이더라. 쉽게 찍은 작품은 그 과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경영적 마인드로 영화 현장을 운영한 것 같다.

▲영화 현장은 인사관리, 생산관리, 마케팅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장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현장에선 한정된 예산 한도 내에서 영화를 만들어내야 했다. 종합상사에서 조직적인 운영체계를 경험했던 이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 상업영화 외에도 내가 독립영화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현장 경영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몸에 밴 절약 정신으로 (웃음) 제작비를 운용해서였다.

-‘젊은 남자’로 스크린 데뷔한 이정재 배우가 얼마 전 ‘헌트’로 감독 데뷔했다.

▲시사회에서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연출을 잘했더라. 연기와 연출을 함께 해내는 게 참 어려운 작업인데(배 감독 역시 자신의 작품 ‘러브스토리’와 ‘정’에서 주연과 연출을 겸한 적이 있다) 잘 해낸 것을 보고 내공이 많이 쌓였다고 생각했다. ‘젊은 남자’는 당시 X세대라 불린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기획했었다. 당시 투자자는 기성 유명 배우를 제안했는데 신인인 이정재의 서글서글하고 자연스러운 인상 그리고 세련된 스타일이 좋아 캐스팅했고, 그런 의도가 주효한 작품이 됐다.

-이번에 출간한 책 '배창호의 영화의 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후배인 안재석 감독의 논문 준비를 계기로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대담집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의 변화와 감독들의 의식 변화 그리고 나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출간했다. 갈수록 영화의 의미가 광범해지는 시대에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다. 차기작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린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 시나리오는 이미 7년 전에 초고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세계 콘텐츠 시장이 한국을 주목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국 영화계의 역량이 성장한 만큼 외국과 합작으로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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