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아시아경제 한예주 기자] 내년 반도체 산업 육성 관련 예산이 1조원에 그치면서 글로벌 반도체 경쟁국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재양성에 쓰일 예산 4500억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총예산의 0.1%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국가 재정 운용 기조가 건전재정으로 전환된 상황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새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그 규모가 아쉽다는 목소리다.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예산안' 자료를 살펴보면 내년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으로는 1조137억원이 편성됐다. 항목별로 보면 인력 양성 예산은 4498억원이 책정됐고, 기술개발(3908억원), 인프라(1471억원), 사업화(260억원) 등에 5639억원이다. 이는 내년도 총지출(639조원)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예산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연말에 확정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마련하는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산업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부터 공약으로 팹리스(설계 전문)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50조원을 출자하고 민간이 추가로 더하는 반도체 기금 '코마테크펀드(가칭)'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취임 이후로도 윤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초강대국 비전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직접 국무회의 등을 통해 관련부처를 독려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반도체 업계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실제 이번 예산안엔 업계의 기대를 모은 반도체 단지의 전력·용수 기반 구축에 대한 지원이 빠졌다. 앞서 산업부는 대규모 신·증설이 진행 중인 평택·용인 반도체단지의 필수 인프라 구축비용에 대한 국비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업이 직접 용수, 전력 등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하다 보니 주변 지역 등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 빚어진 바 있다. 이에 정부가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인프라 조성에 국비 투입 등으로 지원에 나서면 경쟁력 강화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재부 내부 검토 과정에서 전반적인 지출 구조조정 기조 속에서 인프라 조성 국비 지원 예산 규모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제시한 인력 양성에 대한 한계점도 거론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인력 양성은 자금만 투입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원과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필요한데,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논의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서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 기간을 2030년으로 연장하고 대기업 세액공제는 6%에서 20%로, 중견기업은 8%에서 25%로, 중소기업은 기존 10%에서 30%로 확대해 경쟁국들의 세금 지원 혜택 부문은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다. 이것도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확정된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다른 국가에 비해 지원 규모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실제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달 통과시킨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2027년까지 5년간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에 직접 보조금 390억달러를 지원하고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에 11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방부, 국무부 등에서 지원하는 기금도 2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일본은 추경을 통해 자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할 경우 직접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추경을 통과시켰다. 보조금 지급을 위한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 기금은 7740억엔(7조50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에 이른바 '묻지마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