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뉴욕=조슬기나특파원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임박하면서 대만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전례없이 고조되고 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암시하고 나섰으며, 미국은 펠로시 의장에 대한 보호 조치를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이번 방문을 빌미 삼아 대만 해협 부근에서 무력을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치킨게임…바이든도, 시진핑도 ‘직진’ 불가피=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을 바라보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초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가져올 미중 관계 악화 등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대만 방문이 임박하자 펠로시 의장이 안전하게 대만을 방문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오히려 중국이 과민 반응을 하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표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일 "하원의장의 방문은 선례가 있으며 하원의장의 방문 가능성으로 현상이 변화되는 것은 없다"면서 "베이징의 행동은 긴장을 증대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현 시점에서 무산될 경우 ‘미국이 중국의 협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 쇠퇴 신호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지난 4월 대만을 방문했던 미국 민주당의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은 "중국이 대만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결정하도록 (미국이) 허용한다면, 우리는 이미 대만을 중국에게 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올 가을 3연임을 확정할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물러설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시 주석은 양안관계에 있어 ‘평화통일을 지향하나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동시에 대만 민진당 정권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간접적으로 독립의 행보를 추구했다.
이 때문에 미 권력 서열 3위의 대만방문은 이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물리적 충돌로 비화시키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대만 해협은 미·중 갈등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인식돼 왔다. 이런 가운데 권력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현재의 균형을 깨는 위태로운 행동으로 중국은 인식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에 앞서 경고의 일환으로 연일 군사력을 과시하고,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불장난을 하면 불에 타 죽는다"와 같이 과격한 발언을 내뱉은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시 주석은 대만 통일이 자신의 통치에서 주요 목표임을 어느 전임자보다 분명히 했다며 특히 대만 문제에서 강인하다는 이미지를 보이고 싶어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7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국 외교부는 비판 성명를 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사일 발사 등 무력 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중국이 미국의 입법부 수장을 상대로 군사적 도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중국 현지 언론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방문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한편, 대만의 민진당도 저격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전날 ‘1992년의 합의(’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되, 각자의 명칭을 사용)는 대만 동포 복지의 열쇠’라는 제목의 리바오밍 칭화대 대만연구소 부교수의 칼럼을 게재하며 "민진당이 미국에 보호금을 지불하면서 대만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기반시설은 엉망이 됐다. 몇 년 동안 대만 섬 전체에는 정전이 자주 발생했고, 사람들의 인명과 재산 손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표적 대중 매파 펠로시= 중국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미국 권력 서열 3위라는 직함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펠로시 의장의 과거 행적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35년차 하원의원인 펠로시 의장은 미 정치권 내에서도 ‘가장 일관적인 대중국 매파’로 꼽히는 인물이다.
펠로시 의장은 과거 1991년 하원의원 신분으로 베이징을 찾았을 당시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던 사건으로 익히 유명하다.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던 그는 구금됐고, 이 과정에서 공안이 거칠게 미국 의원들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담겼다. 관련 시위 영상은 펠로시 의장이 지난 2019년 6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게재해 상기시킨 바 있다.
이후 1997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에는 민주당 동료 의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 만찬을 주최한 영빈관 블레어하우스 앞에서 장 주석을 폭군이라고 부르며 항의 시위를 했다. 2002년에는 워싱턴을 방문한 후진타오 당시 부주석에게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전달했는데, 후 부주석이 서한을 거부하며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올림픽 유치 등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가 하면, 위구르족 등 중국 인권 문제에도 그는 꾸준히 비판 발언을 이어왔다. 티베트의 영적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교류하고 홍콩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을 만나 지지를 표했다. 중국 정부로선 대표적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인 셈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