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은행 몫'…떠넘겨진 리스크 vs 해야할 일

[빚탕감 논란②]
은행도 최장 20년 상환유예·만기연장
무늬만 자율 VS 과도한 우려
"정밀한 세부 기준 마련 돼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취약층에 대한 정부의 금융지원 대책 중 빠진 부분에 대해선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김주현 금융위원장, 지난 14일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기자간담회 중)

오는 9월말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가 종료되면 시중은행들이 직접 부채 부실화를 막아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100조원 규모의 부채가 취약차주 혹은 취약 우려 차주의 몫이라 추산한다. 이중 30조원은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은행들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한 뒤, 원금을 탕감해주거나 장기·분할상환, 이자 감면 조치를 내릴 계획이다. 남은 70조원은 은행 몫이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정부 정책과 같은 수준으로 직접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은행도 기금과 동등한 수준으로 최대 20년 장기·분할 상환 등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를 두고 "무늬만 ‘자율’이며 은행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지적과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취해야 하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관치금융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무턱대고 금융사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기준을 세우고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말만 '자율'인 관치금융 VS 과도한 우려는 시기상조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제도’로 은행의 ‘자율’에 맡긴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사실상 당국의 ‘지시’라는 데서 출발한다.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에서 빠진 취약층 대출에 대해서 차주별 부실 정도에 따라 은행이 기금과 동등한 수준으로 채무조정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각 은행들은 대상 차주의 90~95%에 대해 다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해줘야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따라 은행이 ‘리스크’를 사실상 떠안게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세부 정책 내용이 나와야겠지만 은행 자체적으로 충분히 차주의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 부실 채권이 아니라고 분류했음에도 정부 기준에 따라 새출발기금에 매각할 대상이 된다면 은행으로선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라며 "원리금을 다 상환받거나 부실채권 시장에 매각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떤 수준의 차주까지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지, 상환 유예 지원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도 없어 혼란스럽다"며 "사전에 또는 정책 발표 시점에 이 같은 부분도 함께 밝혀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결국 ‘디테일’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이 발표되자 불만을 키웠다는 것이다.

한편 같은 근거로 은행권의 불안이 기우라는 반응도 있다. 세부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레짐작으로 불평만 먼저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으레 나왔지만 이번 정책에서만큼은 아직 그런 얘길 꺼내기에는 섣부른 단계"라며 "일단은 정책의 세부 사항이 결정된 뒤 비판해도 늦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취약층 지원이 시급한 시기…"은행 체력도 충분"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대출 금리는 낮추고, 정기 예적금 상품의 금리는 올리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7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 모습./강진형 기자aymsdream@

정부 지원안에 대출 원금 최대 90% 감면해주는 내용까지 담기면서 일각에선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은 금리 급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취약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최근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이어온 만큼 여력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정보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2분기 순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전망치 합산은 4조5367억원이다.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넘은 1분기(4조6720억원)에 이어 또 다시 4조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상반기에만 9조원을 넘는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확실시된다. 가계대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업대출 증가세로 이를 상쇄한 데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순이자마진(NIM) 개선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손준비금과 대손충당금을 더한 손실흡수능력도 키워왔다. 지난해 말까지 시중은행들이 쌓은 대손준비금과 대손충당금은 총 37조6000억원 가량이다. 전년 대비 약 1조7000억원 가량 불렸다. 올해에도 당국이 추가 적립을 요구한 만큼 대손중비금과 대손충당금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선제적으로 움직인 은행도 있다. 우리은행이 대표적이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다중 채무자에게 원금 감면 혜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위험 다중 채무자가 고금리 이자를 1년 간 성실하게 갚은 경우 이미 납부한 이자액의 일정 부분 만큼 원금을 감면해주는 식이다. 정부 대책에 빠져 있는 다중 채무자를 대상으로 고금리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IBK기업은행도 정부 대책과 관계없이 이달 중 자체적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자율에만 의존할 수 없는 만큼 적절한 유인책과 함께 결국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거래 금융기관 기준, 부실차주 분류, 분할상환 시기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업계가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고 도덕적 해이 논란도 잠재우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들도 상반기 이자이익을 많이 거둔만큼 공익적 성격을 가진 기관으로서 건전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며 "적극적인 유인책과 세부적인 조치를 만들면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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