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튀르키예(터키) 정부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던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양국의 가입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양국의 나토 가입이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유럽 내 러시아의 외교·군사적 고립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양국의 나토 가입 절차가 완료되면 육·해상 모든 통로가 차단될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발트해 인접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도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토 정상회의 개최 전 열린 개막식 기자회견에서 "튀르키예는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찬성했으며 무기수출 및 테러 대응 등 튀르키예의 우려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양해각서에도 서명했다"며 "이로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더 많은 나토 국가들과 국경에서 마주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3자 회담을 실시했다. 4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3국은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튀르키예는 스웨덴과 핀란드 양국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 세력을 지원하고 튀르키예에 무기 금수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주요 명분으로 이들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왔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3자 회담과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스웨덴과 핀란드가 튀르키예의 요구사항을 전격 수용한다고 밝히면서 튀르키예도 양국의 나토 가입을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배후에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안보문제 타협이 성사됨에 따라 튀르키예가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으며 미국이 약속한 F-16 현대화 장비 구매에 대한 승인을 서둘러 달라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주요 안보 현안인 공군전력 현대화를 위해 미국 정부에 F-16 현대화 장비 구매를 요청해왔지만 미국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튀르키예와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승인 협상에 들어가면서 튀르키예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부터 미 의회에 튀르키예에 대한 F-16 현대화 장비 판매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튀르키예가 입장을 선회하면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절차는 신속하게 추진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30개국 정상들이 양국의 나토 가입 찬성안에 서명하고, 이후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 동의 절차까지 마치면 앞으로 수개월 내 양국의 나토 가입이 이뤄질 전망이다.
양국의 나토 가입이 사실상 결정되면서 러시아는 유럽에서 더욱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됐다. 특히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는 육상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해상으로는 스웨덴과 핀란드로 둘러싸여 완전히 나토 국가들에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
앞서 리투아니아가 지난 18일부터 자국을 경유하는 화물열차의 운송을 제한한 상태에서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 후 해상운송 제한까지 나설 경우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 칼리닌그라드는 완벽히 봉쇄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 스웨덴 대외홍보처 등 교류기관을 폐쇄한다고 밝히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내 스웨덴 대외홍보처와 국제개발협력국 2개 조직에 대한 활동을 즉시 종료하고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들 조직은 스웨덴의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비판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