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 "날씨 뉴스를 보면 우울해져요." 20대 A씨는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촌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수온 변화로 인해 먹이를 찾지 못한 펭귄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진이나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황이 부진하다는 근황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부정적인 소식을 들으면 미래가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A씨와 같이 기후변화 걱정에 시달리는 증상은 '기후우울(climate grief)' 또는 '생태불안(eco-anxiety)'이라고 불린다. 기후 위기로 인해 슬픔, 분노, 불안 등 부정적인 심리적 증상을 느끼는 것이다. 미래에 벌어질 위기를 생각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자신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죄책감, 절망감까지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연일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 등이 이어지면서 이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19년 미국심리학회가 18세 성인 2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3명 중 2명(68%)이 이상기후와 관련해 불안을 느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중 18-34세에 해당하는 이들의 절반(47%)은 기후 변화에 대해 느끼는 스트레스가 일상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후가 정서에 영향을 준다라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날씨가 덥거나 습한 날씨에 공격성이 증가해 사건사고가 늘어난다는 주장"이라며 "이와 달리 기후우울은 기후재난과 같은 사회적인 상황에 따른 무력감과 우울감을 말한다. 이상기후로 인해 미래가 어둡고, 암울하게 느껴지니 우울 증세를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울한 기후전망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무관심에 깊은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에도 대책을 세우지 않는 사회에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도 기후우울을 심하게 앓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11살일 당시 기후재난과 관련된 영상을 접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식음을 전폐, 두 달간 몸무게가 10kg나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후우울이 지속되면 정신건강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도 기후위기가 정신질환이나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악화 위험을 높인다고 평가했다. 또 기상학자인 보니 슈나이더는 지난 1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환경 불안은 기후 변화와 지구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불안과 두려움을 나타낸다"며 "기후불안이 수면을 방해하는 등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와 자살률 증가 간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2018년 7월 CNN 보도에 따르면 마샬 버크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월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 미국에서의 월간 자살률은 0.68%, 멕시코에서는 2.1% 각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 해당 월 자살률도 덩달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억제되지 않으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오는 2050년까지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인해 9000명에서 4만명이 더 자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기후 변화에 따른 정신건강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감정적 고통을 받고 있는 인류를 위해 국가가 정신 건강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마리아 네이라 WHO 환경기후변화보건국장은 "기후 변화의 영향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는데, 관련된 정신 건강 지원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