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문채석기자
[편집자주]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경영 화두로 떠오른 지 2년이 됐다. ESG는 이제 기업의 생존 과제이자 경영의 필수 요소다. 특히 세계 각국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탄소중립은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되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등 ESG 경영 실천과 투명한 정보 공개, 그에 기반한 투자 유치와 혜택 제공, 평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ESG 경영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는 거대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경제는 연중 기획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우리나라 ESG 경영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기업과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에 이바지 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본다.
"스타트업이 탄소중립을 구현할 새 기술을 개발해도 시범생산과 상용화 단계까지 가는데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와 기술기업, 연기금과 밴처캐피탈(VC) 등 이해관계자 사이에 믿을 만한 ‘중재자’의 존재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지속가능금융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인소영 지속가능금융이니셔티브(SFI) 책임연구원 겸 스탠퍼드 한국센터 리서치 디렉터는 2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탄소중립의 금융 분야 문제점을 이렇게 짚었다.
탄소중립 실현이 미래세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도전과제가 된 가운데 기술, 금융, 정책이 공조해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는게 인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에서 활발하게 등장하는 에너지 스타트업을 예로 들었다. 이들 스타트업은 기존의 VC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새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특징. 하지만 단기 차익실현을 추구하는 VC의 속성과의 괴리감이 커 수준 높은 기술이 있어도 자금을 지원받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인 책임연구원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정부나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이 이해관계자들과 참여자 간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기술혁신을 직접 주도하는 것보다는 초기 기술투자에 특화된 VC, 관련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지닌 기업, 장기투자 위주로 하는 기관투자가 등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투자와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믿을 수 있는 중재 기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국의 경우 현실적으로 정부가 이 같은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중재기관이 되서 투명한 공시 제도와 기업 사정에 맞는 재원 마련 플랫폼 등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인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예를 보면 에너지 스타트업의 '죽음의 계곡'은 연구개발(R&D)-파일럿 착공-상용화까지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며 "제약회사처럼 대기업이 신약 기술개발이 막바지에 접어든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도록 이해관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정보공유 체계'를 만드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활성화되는 것과 관련해 기준 또는 규준을 마련하는 제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그는 탄소 배출량의 경우 철강, 자동차 등 특정 산업은 절대적 탄소 배출량이 다른 산업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산업 특성과 부가가치 창출을 고려한 상대적 평가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산업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지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기존 온실가스 배출 관련 국제 표준 체계 'GHG 프로토콜'인 스코프 1, 2, 3에 더해 제품의 소비 단계에서 발생되는 '탄소 역배출'을 고려한 '스코프 4'를 자체 개발한 미국의 ESG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이토 캐피탈'이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했다.
기업이 친환경 에너지 및 원자재 등을 소비해 회피된 배출량 또는 배출량 감소를 고려할 경우 스코프 4가 낮게 기록되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높은 ESG 점수가 나오게 된다.
반면 '청정 석탄(White coal)'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는 중국식 녹색 채권(그린 본드) 발행 같은 '그린 워싱'을 가려내는 규준을 갖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학계에서 나오고 있는 '그린 워싱'의 양상을 식별하고 ESG 지표의 신뢰성, 관련 지표들 간 관계 등을 검증하는 연구들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SG 경영을 잘하고 있는데도 일부러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침묵을 하는 '사일런트 그린' 등을 관리하는 체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인 책임연구원은 "결국 기업들이 탄소 배출 저감에 동참하도록 시장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은 올바른 규준 마련에 달려 있다"면서 "기업의 신재생 에너지 전환 정도 및 탄소 감축 성과 등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체계를 마련하고 재무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재원조달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피력했다.
한편 인 책임연구원은 오는 27일 '넷제로가 미래다'란 주제로 아시아경제와 스탠퍼드대학교가 공동 주최하는 '제10회 아시아미래기업포럼'에 강연자로 참석, 글로벌 넷제로 전환과 지속가능금융 등을 공유할 가질 예정이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