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 특수부서 잔뼈 굵은 '강골검사'… 트레이드마크 '뚝심·의리'

9수 끝에 사법시험 합격
노무현 정부서 안희정 등 구속수사
문재인 정부서 조국 수사 등 이름 알려
정치 입문 후 돌파력으로 갈등 해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시절. [사진출처= 국민의힘 선대본부 제공]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은 국회의원 ‘0선’의 정치신인이라는 점만으로도 우리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6월 정치 참여를 선언한 이후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보다 빠른 기간 내에 대선 고지를 점령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뚝심과 결단력, 의리의 리더십이 발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잔뼈 굵은 특수부 검사=1960년 서울 출생인 윤 당선인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 슬하의 1남1녀중 장남으로 비교적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윤 당선인은 잔뼈 굵은 ‘특수부 검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윤 당선인은 9수 끝에 1991년 만 31세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검찰 생활 내내 ‘특수부 검사’ 생활을 한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대표 등 고위 인사들을 구속 수사했다.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1년 만에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친정으로 복귀한 뒤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내지른 국정감사장의 작심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후 ‘상부보고 누락’을 이유로 대구고검으로 발령이 나면서 사실상 ‘좌천’을 당한다. 하지만 ‘강골검사’ 이미지를 새겼고 3년 뒤인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에 합류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기용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 수사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맡으며 현 정부여당과 대척점에 서게 된다. 특수부 검사 시절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 문 정권의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를 감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당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반대 속에서 윤 당선인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로 현 정권과 각을 세우게 된 그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속에서 검찰총장직에 물러났다. 같은 해 6월 그는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공정과 상식’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윤 당선인은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공정과 정의라는 현 정부의 내로남불의 대척점이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입문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경선 기간 내내 야권 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유지하며 국민적 관심을 받아왔지만, 잇단 실언과 캠프 내 논란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전 대선 출마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1.6.29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소위 ‘윤핵관(윤석열측 핵심관계자)’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선거대책위원회 내부에서 이준석 대표와 조수진 당시 공보단장 간 충돌, 급기야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사퇴까지 이어지는 동안 윤 후보의 리더십은 위기를 맞았다. 선대위 규모를 축소하고 전열을 가다듬은 이후 본격적인 대선레이스에 나섰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다섯글자 공약을 올리면서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는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됐다.

초박빙 지지율이 이어지는 살얼음판 유세에서 그는 후보 단일화를 관철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제안한 경선 방식의 단일화 요구를 거절하고 담판 방식으로 이를 성사한 것이다.

◆뚝심과 의리의 리더십= 검사 시절 내내 ‘강골 검사’의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 당선인은 정치 입문 후에도 특유의 돌파력과 뚝심으로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갔다. 전격적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에 참여했다거나 잠행에 들어간 이 대표를 울산에서 직접 만나 극적 화해에 이룬 것이 대표적이다. 또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힘겨루기를 벌인 끝에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김병준 전 상임선대위원장, 김한길 전 새시대준비위원장을 기용하기도 했다. 안 대표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그를 설득하는 문자를 보내고 직접 연락을 취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한번 믿는 사람은 쉽게 내치지 않는 그의 ‘의리’도 리더십의 비결로 꼽힌다. 검찰 시절에도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을 품어왔을 뿐 아니라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인사 형태를 보였다. 다만 이 같은 특성 탓에 ‘윤핵관’ 논란이 줄곧 따라다니며 ‘자기 편만 챙긴다’는 우려를 남기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치고 손을 맞잡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자유주의 경제에도 관심…한은 입행 꿈꾸기도=윤 당선인은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았지만, 정치 입문 이래 줄곧 자유주의 경제를 강조해왔다. 서울대 법대 입학 기념으로 부친 윤 기중 명예교수가 선물한 책이 미국 내 대표적 신(新) 자유주의 학파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였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사법고시에서 연거푸 실패하자 한국은행 입행을 고민하기도 했다. 경제학에 관심이 많은 건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은 52세에 12살 연하인 김건희씨와 결혼했다. ‘애처가’라고 불리기를 마다치 않는다. 슬하에 자녀는 없으며,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한 자리에서 맥주 3만cc를 마신다’고 할 정도로 주량이 세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테인리스 팬으로 달걀말이를 타지 않게 부쳐냈을 만큼 요리를 즐겨 한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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