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 대척점 선 20대 男女, 구애하는 후보들도 안간힘

정치 시각 서로 다른 이대남·이대녀
지난 2018년 文 정부 지지율 격차 크게 갈려
4·7 재·보선서도 갈라선 男女 '표심'
'젠더 갈등' 그 중심에 있을 수도
전문가 "기존 보수·진보 구분과 달라, 탈이념 세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신지예 신임 수석부위원장에게 빨간 목도리를 둘러줬다.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대선을 앞두고 양대 정당 후보들의 '20대 유권자 구애' 경쟁이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른바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알려진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당의 영입 인사로 채택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대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하는 등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20대의 마음을 사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불거진 '젠더 갈등'에 큰 영향을 받은 청년 세대는 '이대남(20대 남성 유권자)'이냐 '이대녀(20대 여성 유권자)'냐에 따라 정당, 정치인 등에 대한 선호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20대 유권자에 대해 기존 진보·보수가 아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특징을 가졌다며 '탈이념적 세대'라고 규정했다.

양당 후보 모두 이대남·이대녀 구애 총력

국민의힘은 20일 윤 후보의 직속 기구 '새시대준비위원회'에 신 전 대표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신 부위원장은 이날 영입인사 환영회 자리에서 "윤 후보가 여성 폭력을 해결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해 함께 하기로 했다"고 국민의힘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윤 후보 또한 향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보수뿐 아니라 여성·청년 또한 끌어안을 수 있는 '빅 텐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신씨도 국민의힘 분들과 큰 차이가 없다"며 "국민의힘도 국민들의 지지 기반도 넓히고, 철학과 진영을 좀 더 확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당내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MBC '뉴스외전'과 인터뷰에서 "강성 페미니즘 조류와 행보를 같이 한다면 강한 비판을 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젠더 갈등을 가볍게 바라보는 윤석열 선대위가 우려스럽다"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20대 유권자 정책을 두고 내홍을 빚는 것은 국민의힘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또한 '디시인사이드'(디시), '에펨코리아'(펨코)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하며 20대 청년들에게 적극 구애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들은 주로 20대 남성들이 이용한다.

이 후보는 지난달 10일 페이스북에 '홍카단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공유하며 "한번 함께 읽어 보시지요"라고 권하기도 했다. 과거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지지했다는 한 청년이 쓴 이 글은 민주당이 그동안 '여성 우대 정책'에 매몰해 있었다며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 / 사진=페이스북 캡처

이 후보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일부 민주당 지지층은 우려를 표했다. 이 후보가 '이대남'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성 정책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지지자는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청년, 청년 하는데 여성은 청년이 아닌가"라며 "일부 남성 표를 얻겠다고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서로 다른 표심 가진 이대남·이대녀

양당 후보의 '20대 정책'이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현재 20대 유권자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들은 소득 수준, 좌우 정치 성향 등 기존의 구분뿐 아니라 '성별'에 따라서도 정치 성향이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대남과 이대녀는 같은 연령층으로 묶이지만, 정치 선호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특성은 지난 2018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당초 문재인 정권 초기인 지난 2017년만 해도 20대 남녀의 정치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출범 2년차인 2018년 하반기부터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 해 12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조사한 연령·성별 정부 지지율 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29.4%로 전 연령·성별 중 가장 낮았다. 반면 20대 여성은 63.5%로 모든 연령·성별 구간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7월5일 오후 광주교도소를 나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를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실형을 확정받았다. / 사진=연합뉴스

20대 여성은 이후로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안희정 전 충남지사,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여권 고위공직자들의 성추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서서히 이탈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도 이대남과 이대녀의 특징이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20대 남성 투표자 무려 72.5%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한 반면,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득표율은 22.2%에 그쳤다.

20대 여성은 박 전 장관(44%)의 지지율이 오 시장(40.9%)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표심'이 크게 갈라진 셈이다.

'젠더 갈등'도 20대 주요 현안…전문가 "탈이념적 세대, 이해관계 따라 투표해"

어째서 이대남과 이대녀는 서로 다른 정치적 시각을 가지게 됐을까. 일각에서는 최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불거진 '젠더 갈등'이 둘의 시각 차이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정부 지지율이 갈리기 시작한 지난 2018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 불법촬영에 대한 경찰의 편파 수사 문제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 등 여성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시기였다. 당시 20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관련 영상이 게재된 유튜브 채널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비추천'을 통해 반감을 드러냈다. / 사진=KBS 방송 캡처, 유튜브 캡처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가 여성 편향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남성 누리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선 유세 도중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 언급을 문제 삼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말했는데, 이 영상에는 "군인은 찬밥인가", "페미 대통령 만들려고 문재인 뽑았나" 등 악성 댓글이 빗발쳤다.

현재 20대가 주축이 된 젠더 갈등은 단순히 정치뿐 아니라, 일상적인 부분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기간 당시, 양궁 국가대표 선수 안산(20·광주여대)에게 '반(反) 페미니즘'의 불똥이 튄 바 있다.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숏컷 헤어스타일 안산 선수는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 의혹은 이후 '숏컷 페미' 논란으로 번졌고, 곧 안산을 비난하는 남성 누리꾼들과 이에 대항하는 여성 누리꾼들의 '성대결'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시위' 당시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젠더에 대한 두 집단의 서로 다른 인식 차이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19~34세 청년 65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평등 인식 차이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년 남성 중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답변했고, 여성 중 74.6%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라고 응답했다.

반면 "우리 사회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인식한 이들은 20대 남성(29.7%), 여성(17.7%) 모두 소수 의견이었다.

전문가는 현 20대에 대해 '탈이념적 집단'이라고 규정하며,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기존과는 다른 선거 전략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난 보궐선거에서 이대남이 갑작스럽게 여당에서 이탈해 국민의힘으로 몰렸던 것과 같이, 20대는 성별에 따른 표심 변화가 크다"라며 "여야도 변동성이 심한 유권자들에 대응을 하려다 보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20대는 기존 진보, 보수 같은 이념적 잣대로는 파악할 수 없다. 이들은 '탈이념적'인 세대라는 게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투표를 하는 세대라는 뜻이며, (대선 후보들은) 이들이 앞으로 미래의 정치 세대를 좌우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유념하고 (선거전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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