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올해 시각효과(VFX) 기업은 몸값이 급등했다. 영화·드라마·광고 수요 때문이 아니다. 사업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주목되는 분야는 확장가상세계(메타버스). VFX가 가상공간을 조성하는 핵심 기술이다. 실제 사물에 바탕을 둔 감각적 인상을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새로 창조하는 감각적 인상도 마찬가지. 주관적으로 형성하고 반영해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발전했다. 최완호 덱스터스튜디오 기술지원본부 최고기술경영자(CTO)는 "VFX는 현실과 구별하기 힘든 고품질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구현이 최종 목적"이라며 "메타버스와 밀접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상용화에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메타버스 전망도 다르지 않다. 다만 전제가 붙는다. 기술발전의 종합적 선행이다. VFX에선 캐릭터와 공간 묘사의 실재감 구현이 꼽힌다. 최 CTO는 "아직은 만화처럼 단순하게 묘사하는 수준"이라며 "MZ세대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하나 중장년층으로 연령대를 확대하고 현실을 대체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더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고병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미디어본부 이사는 "그래픽카드를 포함한 컴퓨터 성능과 인공지능(AI) 활용 기술이 급격히 발달해 연구개발(R&D)에 탄력이 붙고 있다"고 했다.
초점은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AI 등에 맞춰져 있다. 개발 중인 정보는 대부분 대외비. 완성된 기술과 작품으로만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덱스터스튜디오의 VR 기술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2017년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역량을 강화했다. '프롬 더 어스', '조의 영역', '신과 함께 VR: 지옥 탈출', '신과 함께 VR: 기억의 조각' 등이다. '화이트래빗'과 '살려주세요'는 2018년 칸국제영화제도 진출했다.
AR 성과도 만만치 않다. 근래 성공작은 LGU+ 5G 콘텐츠 '멸종 위기 동물 실감형'과 한국문화재재단 소대헌 활용 실감형 문화유산콘텐츠. 전자에는 멸종 위기 동물과 영화 속 동물 마흔 종이 4K 화질로 구현됐다. 후자는 볼류매트릭(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으로 입체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 캡처로 공간에 최적화된 문화유산 체험을 제공한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에 중국풍 도자기 전파와 일본 차 문화 등을 실감형 영상 콘텐츠로 보이기도 했다. 관계자는 "현지 로케이션 기반의 고해상도 촬영과 첨단 모션그래픽, 매트페인팅(실사 촬영이 어려운 공간을 묘사하는 그림) 등으로 고품질 영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선전한 동력은 한국·중국 영화에서 VFX를 맡으며 쌓은 경험이다. 최 CTO는 "동물 털로 대표되는 디지털 캐릭터 제작기술과 바다·숲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환경 제작기술을 자체 개발했다"며 "디지프로(DigiPro), 시그라프(SIGGRAPH) 등 국제학술대회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 다각화에 발맞춰 적용 범위를 확장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사업에 참여해 HMD(Head Mounted Display)과 프린터용 홀로그래픽도 개발한다"고 부연했다.
R&D를 통한 기업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주문형 공정의 틀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VFX 기업들은 약점을 메우기 위해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한다. 고 이사는 "가상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 IP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2023년 하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체 콘텐츠 제작은 물론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IP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엔진비주얼웨이브의 사업 방향도 비슷하다. 모회사 NEW의 IP를 활용해 수익구조 개선을 꾀한다. NEW는 영화 '부산행'·'7번방의 선물'·'변호인' 등의 배급사다. 드라마, 음악, 스포츠, 영화관 등의 사업도 병행한다. 이성규 엔진비주얼웨이브 대표는 "메타버스가 상용화되면 독점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온다"며 "기술만큼 콘텐츠를 고르는 안목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익 사업으로는 가상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가 꼽힌다. 엔진비주얼웨이브는 자체 개발한 4D 페이셜 스캔 시스템과 한국어 음소에 특화된 스피치 애니메이션 기술을 롯데홈쇼핑 모델 '루시'에 적용한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조만간 '반디'를 포함한 다인종 모델 세 명을 공개한다. 디자인 개발부터 라이브 구현·제어까지 전 과정을 주도해 이뤄낸 성과다. '루시' 초기 개발 과정을 주도하고 걸그룹 에스파의 AI 아바타 등을 만들며 원천 기술력을 확보했다. 고 이사는 "3D프린터를 활용한 페이셜 캡처 헤드 마운트, 풀바디 퍼포먼스 캡처가 가능한 자체 하드웨어·연동 시스템, 캡처된 요소를 조합해 실시간 운용하는 솔루션 등은 특허를 출원했다"고 설명했다. 다인종 모델은 영화, 드라마, 공연은 물론 메타버스 진출까지 예고돼 있다. 고 이사는 "개발이 한창인 AI 시스템을 결합해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라며 "실시간 제어가 가능하고 3D 모델 기반에서 자율적으로 인지·행동하는 모델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