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노동의 시대 저물고 '긱 이코노미' 시대로

슈퍼사이클 맞은 해운·조선업계
일감 크게 늘었지만
불황으로 임금 수준 낮아져
"수년째 숙련인력 빠져나가고
신입은 충원도 못하는 상황"
택시업계도 구인난 몸살
서울시 기사수 올해 31.4%↓
배달 플랫폼으로 대거 이탈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김보경 기자, 부애리 기자, 이기민 기자] "일이 늘어 사람이 더 필요한데 뽑을 사람이 없다." "어차피 노동으로는 돈 못 번다."

국내 인력시장에서 최근 두드러진 흐름은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불거진 이른바 미스매칭이 심화한 업종이 늘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시면서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완연해졌고 조선·해운업은 몇 년 만의 슈퍼 사이클로 일감이 크게 늘었지만 정작 일할 사람이 부족해 허덕이는 곳이 부쩍 늘었다.

특히 최근 수년간 부동산 자산이 비상식적으로 급등한 데다 주식이나 코인 등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한탕을 노리는 일확천금 소식을 쉽게 접하면서 이런 경향은 한층 더해졌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일해서 돈을 번다는 오래된 상식이 고루한 사고방식으로 치부되는 일도 흔해졌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도 직장과 직업을 전 생애주기에 걸친 문제가 아닌 기회 되면 이직이 가능한 ‘자리’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여기에다 최근에는 산업 환경 변화에 바로 반응하지 못하는 대학교육 문제도 겹치면서 인력 미스매칭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도크 전경.

슈퍼 사이클이라는데…배는 누가 짓나

산업계에서 최근 해운업계만큼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곳은 ‘슈퍼 사이클’에 버금갈 정도로 일감이 늘어난 조선업계다. 13일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조선소가 수주한 물량은 1696만CGT(표준환산톤수)로 앞선 2년치(2019·2020년) 수주 물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통상 조선소 현장이 발주처 일감을 확보하고 나서 1년가량 지나 실제 건조작업을 진행하는 점을 감안하면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부터 대규모 인력이 투입돼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인력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건 지난 수년간 지속된 불황으로 임금수준이 낮아진 여파가 크다.

영남권 조선업체 한 관계자는 "원청(대형 조선사)에서 단가 인하 압박이 워낙 셌고 그로 인해 이미 중소 하청업체 상당수가 사라진 상황"이라며 "수년째 숙련인력이 빠져나가고 신입은 충원하지 못했는데 아직 원청에서도 수익성이 나아지지 않은 터라 직원 눈높이에 맞는 임금을 주긴 단기간 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뜨는 배달, 지는 택시

택시업계도 기사 구인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택시회사들과 손잡고 최초로 취업박람회를 열고 기사를 모집하기도 했다. 연말 모임 시즌이 되면서 택시에 대한 수요는 넘쳐나고 있지만 택시를 운영할 기사들이 급격히 감소해서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택시기사는 총 24만108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월 26만7576명에서 약 10%(2만6496명) 줄었다. 특히 서울시 법인택시 기사는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같은 기간 법인택시 운수종사자 수는 3만527명에서 2만955명으로 31.4% 감소했다.

택시기사 구인난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생계가 어려워진 택시기사들이 배달 플랫폼 등으로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주위 기사들이 배달이나 퀵 플랫폼으로 이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들의 처우도 확연히 차이난다. 업계에 따르면 택시기사들의 평균 임금은 200만원대 초반 수준이다. 반면 배달 라이더들은 많게는 400만~5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커진 플랫폼, 인력 빨아들인다

반면 플랫폼 시장에 기반한 일명 ‘긱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배달의민족의 일반인 배달기사 배민커넥트 숫자는 2019년 1만명에서 올해 5만명으로 늘어났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로 인해 일할 시간과 여력이 늘어난 정규직 근로자들이 퇴근 후 배달업에 뛰어드는 것은 흔한 현상이 됐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규모는 220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8.5%를 차지했다. 플랫폼 종사자 중 절반 가까이(47.2%)가 주업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단기로 계약을 맺거나 일회성 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유연한 형태의 노동이 가능한 것이다. 긱 노동자 증가 현상은 플랫폼 시장이 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과 워라밸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비대면 거래 증가 등의 사회 변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고젝 드라이버 헬멧. 고젝은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 호출서비스로 시작해 배송인력이 2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플랫폼 종사자가 는 건 산업환경이 바뀌면서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지난 2월 국제노동기구(ILO)가 세계 100개국의 플랫폼 종사자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0년 사이에 웹기반 플랫폼 노동은 3배, 음식 배달 등 지역기반 노동은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 팀장은 "근로소득보다 주식, 가상화폐 등 금융자산 가치가 급속히 커지는 상황도 구인난 분위기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며 "또한 코로나19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배달 애플리케이션 라이더 등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일자리로 많은 인력들이 몰리는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하는 경제상황)가 대두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산업과 일자리에 대한 취업자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기업과 대학이 매칭해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관련 계약학과를 만들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등 고용 유연성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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