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세계는 바야흐로 ‘환경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개인과 기업, 정부 모두 환경 이슈에 천착하고 있어서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숨쉬는 일이 환경을 도외시해서는 안심할 수 없게 돼버린 현실을 자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190개 국가 대표들이 석탄발전 감축이나 중단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방증한다.
제조업의 시각에서 볼 때 ‘생산’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환경을 어느 정도 훼손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기도 하다. 종이를 생산하려면 나무를 베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만드는 많은 것들이 자연으로부터 얻은 원료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의식 있는 소비를 하기 위해 고민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소개할 장소인 ‘메일팩’ 역시 이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브랜드다. 메일팩은 가방을 비롯해 카드지갑, 파우치 등을 만드는 곳으로, 모든 제품은 종이로 제작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있는 이곳은 건강한 소비와 동시에 멋스러움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다.
메일팩 쇼룸의 첫 인상은 트렌디함이다. 반지하에 있는 매장임에도 외부 전면이 창으로 구성돼 밖에서도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품고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고 싶어질 것 같다. 내부 공간은 메일팩에서 제작한 다양한 제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브라운 색상의 종이가방이 주는 따뜻한 느낌과 나무와 화이트, 그레이톤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따뜻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메일팩의 ‘트레이드 마크’인 종이가방이다. 얼핏 보면 평소 사람들이 자주 메는 가죽가방으로 보일 만큼 허술하거나 약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만져보면 종이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크기의 일반 가방과 비교해 훨씬 가벼울 뿐 아니라 종이가 주는 특유의 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종이가방은 흔히 마트나 상점에서 물건을 샀을 때 일회용으로 물건을 담기 위해 활용되곤 한다. 비가 오면 젖고, 무거운 물건을 담으면 견디지 못하고 금방 찢어지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기는 어렵다. 메일팩은 이런 종이가방의 단점을 보완해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방을 만들었다. 물에 젖지도, 절대 찢어지지도 않는, 일회용이 아닌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종이가방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메일팩은 원래 다른 기업의 가방, 캐리어 등의 제품을 기획·생산·디자인해주는 작은 회사였다. 그러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많은 산업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점을 알게 됐고, 메일팩 운영자들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이 종이라는 소재였고, 연구를 거쳐 지난해 초 처음으로 종이가방을 선보였다.
조민규 매니저는 "가방의 소재로는 당연히 가죽이나 천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종이의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메일팩의 움직임은 제품 제작 과정에도 녹아들어 있다. 모든 제품을 사각형으로 제작하는데, 이는 사각형 모양이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른바 ‘제로웨이스트 디자인’으로 불리는 이런 제작 방식은 제품 판매와는 상관없이, 친환경을 향해 지속해서 고민하는 메일팩의 비전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조 매니저는 "일반적으로 가방을 하나 만들기 위해선 많은 자투리가 발생한다. 디자인 자체를 사각형으로 제작하면 쓰레기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렇게 노력을 기울여도 상품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메일팩은 이렇게 남은 원단까지도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카드지갑을 만들어 주는 데 활용한다. 조 매니저는 "남은 원단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손님들에게 제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버려지는 원단은 재활용되고 손님들에겐 자연스럽게 제품에 관해 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바라만 보던 기자에게도 카드지갑 만들기 체험 기회가 주어졌다. 자투리 원단과 지갑에 들어갈 버튼 색상을 직접 선택한 뒤 간단한 접기와 바느질 과정을 거치자 금세 튼튼한 카드지갑 하나가 완성됐다. 그냥 두면 버려졌을 작은 종잇조각이 단숨에 유용한 물품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조 매니저는 이런 마케팅이 2030세대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움직임이 자신만의 개성과 의식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청년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요즘 청년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환경에 관심이 많고 어떤 제품을 선택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는데, 우리의 노력이 그런 점에서 호응을 얻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 매니저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메일팩이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일상에서 간편하게 활용할 에코백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서 "그때 의식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쓸 만한 물건, 동시에 멋스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거창한 구호를 외치거나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의 작은 노력과 건강한 소비가 모여 환경을 위한 또 다른 실천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