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올해도 무산…소비자 불편 외면

보험업법 개정안 12년째 표류
일부 의원들, 의료계 반대 눈치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3800만명이 가입해 '제2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법안이 올해도 논의되지 못했다. 12년이 넘도록 국회 논의가 진전되지 않으며 일부 국회의원들이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소비자 불편을 외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3일 국회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하지 않았다. 정무위 관계자는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의료계가 반대하는 만큼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법안은 고용진·전재수·김병욱·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안까지 21대 국회에서 5개나 발의됐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금 청구를 위한 종이서류를 전자서류로 대체하는 것이 골자다.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관련 자료를 의료 기관에 요청하면, 의료 기관이 자료를 전산망을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나 제3의 기관을 거쳐 보험사로 전송되는 방식이다.

환자가 의료기관이나 보험사를 방문하지 않고도 서류를 제출할 수 있으며, 자동적으로 보험금 청구와 지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기관도 불필요한 서류 발급을 위한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매년 수억장의 종이서류가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실손보험 가입자 대부분은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와함께 등 소비자단체가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2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에 달했다.

지난해 손해보험사 기준 전체 실손보험금 청구 7944만4000건 중 전산 청구는 9만1000건(0.1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료계는 서류제출 의무를 보험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게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민감한 환자 의료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심평원이 비급여 항목을 들여다볼 수 있어 향후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환자가 진료 정보를 보험사에 제출하고, 전산화를 한다고 진료정보의 내용이 달라질게 없는데도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은 비급여 때문"이라며 "비급여 통제는 곧 의료기관의 수익에 직결되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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