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성폭력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피해자 유발론'이 횡행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영화 촬영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배우 반민정 씨는 가해자 조덕제로부터 받은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조덕제의 비방글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어 너무 힘들다"며 "타 사건을 위해서라도 범죄 피해자에 대한 가짜뉴스, 허위 의혹 제기, 무분별한 비방 등의 2차 가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저도 제가 피해자가 될 지 예측하지 못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 위해, 혹은 피치 못해 피해를 당했다면 대처할 수 있는 도움을 드리기 위해 용기를 낼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그런가하면 지난 10일에는 부산의 한 공무원 A씨가 50대 남성 상사로부터 수년간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가해자는 A씨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성범죄를 저지른 후 "나를 거부하면 공무원을 못하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는 협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7월 A씨가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가해자는 A씨의 뺨을 때리거나 폭언폭행을 일삼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해자의 부인이 수차례 찾아와 'A씨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는 취지의 소문을 내 2차 가해를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2차 가해는 6개월 남짓 계속됐다.
이에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2차 가해 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구청은 가해자를 직위해제만 했을 뿐 진상조사와 2차 가해 등 재발 방지 조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며 "이번 사건은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비위 문제와 이를 묵인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 때문이다. 성범죄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온라인 상에서의 2차 가해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는 2차 피해를 호소했다. 그는 지난 3월17일에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잔인한 2차 가해가 가장 힘들었다"며 "저라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박) 전임 시장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명칭과 사건 왜곡으로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은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두고 보다 적극적인 2차 피해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원인을 '피해자 유발론'으로 진단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2차 가해는 결국 피해자에게 책임 소지가 있다는 인식, 즉 피해자 유발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온라인 상의 2차 가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다. 장 연구위원은 "(2차 가해가) 과거에는 주변인들의 수군거림에 한했다면 현재는 온라인 상에서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게 된다"며 "피해자로서는 최초의 성폭력 피해가 영속적으로 반복되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장 연구위원은 "최초 성폭력 가해자에 비해 온라인 상의 2차 가해자는 워낙 수가 많고 광범위해 처벌도 어렵다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장 연구위원은 "사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제도도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2차 가해가 만연한 데에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성폭력이) 피해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고 보는 인식,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