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한ㆍ미 공동연구보고서 승인을 계기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즉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SFR)을 둘러 싼 논란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단점을 상쇄할 꿈의 기술"이라는 찬성 측과 "연구비 타내려는 신기루 같은 소설에 불과하다"는 비판론의 대립이 여전하죠.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에서 재순환이 가능한 핵연료와 폐기물을 분리수거해 재활용하는 기술이 '파이로프로세싱'입니다. 마치 생활쓰레기에서 캔, 플라스틱 등을 분리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자로를 가동하면 많은 양의 사용후핵연료가 나오는 데, 여기에서 우라늄(94%), 초우라늄(1.5%)을 추출해 재사용하거나 소듐냉각고속로의 연료로 활용하고, 나머지 폐기물(4.5%)만 장기간 저장관리한 후 중저준위로 수위를 낮춰 처분한다는 개념입니다.
이 기술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오랫동안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많은 원자력 이용 국가들이 관리ㆍ처분 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현재는 각 발전소의 수조에 임시보관돼 있는 데, 2019년 기준 약 4만t이 넘어 2020년대 내에 저장 용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초우라늄은 SFR의 연료로 쓰고, 고열의 핵종을 분리ㆍ저장해 관리하면 고준위 폐기물의 처분 면적과 보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원자력연구원의 입장입니다. 예컨대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한다고 치면, 파이로프로세싱 이전엔 7500㎡이 필요하다면 이후엔 80㎡로 줄어들고, 방사능이 자연 수준으로 감소하도록 보관하는 기간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대폭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핵비확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원자력연구원 측은 건식인 파이로프로세싱 자체로는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이같은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꿈의 기술'이 맞겠죠. 원자력발전의 가장 큰 단점이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ㆍ관리하기 어렵고 고비용이 든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을 거친 후 나오는 초우라늄을 사용해 가동한다는 '소듐냉각고속로'의 경우 최근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소형모듈형원자로'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몰두하고 있는 원자로 '나트리움'은 소듐 즉 나트륨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소듐냉각원자로입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기술적ㆍ경제적인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단계라는 것입니다. 한ㆍ미 양국이 지난 10년간 공동으로 파이로프로세싱-SFR 기술을 연구해 이를 검증하려 노력했고 최근 보고서가 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일각에선 경제성ㆍ기술적 안정성에 대한 긍정적 내용이 포함돼 실증 사업ㆍ상용화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팩트만 담겨 있을 뿐 긍정적인 결론이 도출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부인했습니다. 또 향후 적정성위원회를 통해 연구 계속 여부를 검증한다는 방침입니다.
반대 측에선 파이로프로세싱의 여러 단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사용후핵연료 수집 과정에서 방사능이 샐 수 있고, 고속로의 안전성도 문제입니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가 흑연을 냉각재로 썼다가 폭발했듯이, 소듐은 공기와 만나면 폭발하기 때문에 핵재난의 잠재적 원인으로 손꼽힙니다. 전세계에서 수십년 동안 100조원이 넘는 돈을 써가며 고속로 개발에 나섰지만 성공한 곳은 없습니다. 비용도 문제입니다. 경수로 2기당 고속로 1개를 지어야 하는 데, 수명이 50년 정도라 수백개를 지어야 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데 반대 측의 주장입니다. 차라리 중간처리장을 건설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죠.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 지구 온난화를 막는데 집중해야 할 시기입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로가 파이로프로세싱 기술로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죠. 그러나 과학ㆍ기술은 정치ㆍ이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안전과 기술적 완전성, 경제성이 타당하게 입증되어야 합니다. 탈핵 논란처럼 정치ㆍ이념 쪽으로 흘러 소모전만 벌일 때가 아니죠. 원칙과 과학에 입각한 실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