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식 공정' 내건 이준석, 정말 2030의 '세대정신'일까

2030 일부 남성들에게 '앉혀진' 이준석
'능력주의·경쟁' 모든 청년층 동의하지 않아
전문가 "적자생존 강화하는 위험한 생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1회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 나는 국대다! with 준스톤'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75%'. 지난 24일 성황리에 마친 국민의힘 토론배틀 제1차 면접 합격자 중 남성 진출자의 비율이다. 실제 면접 전형에 참여한 150명 중 7~80%에 이르는 참가자가 남성이었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열어주겠다"며 공정한 경쟁을 내걸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는 이 대표와 국민의힘이 최근 20대 남성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4·7 재보궐 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층은 국민의힘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72.5%의 지지율이라는 기록으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어 20대 남성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이 대표가 지난 5월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직후 단숨에 여론조사 1위 자리에 올라섰다.

당시 정치권은 이 대표가 당의 세대교체를 일으킬 주역이 됐다고 환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이 대표에게 통화로 "아주 큰 일 했다. 훌륭하다. 우리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과 국민의힘 당원들은 젊은 변화의 리더십을 선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대 커뮤니티 남성에게 '앉혀진' 이준석

국민의힘 초선 공부모임에 참석한 하태경 의원과 임명묵 작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90년대생의 시각으로 정치권을 분석해 화제를 모은 임명묵 작가는 이를 두고 2030 남성층의 '세대 정신'이라고 해석했다. 임 작가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명불허전 보수다' 강연에서 "이준석이 시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서 띄운 사람은 20대 청년 남성층"이라면서 "이 커뮤니티에서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커뮤니티 내에서 투쟁을 통해 훈련된 사람들이다. 이 같은 투쟁이 매일 같이 벌어지다가 정치로 옮겨간 게 이준석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또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젠더 의식을 강조해 2030 남성들에게 피해 의식을 심어줬다"면서 "이준석은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20대 남성 청년들에게 '앉혀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일부 청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만큼 온전히 2030의 세대 정신으로 대표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청년층 사이에선 그가 내건 '능력주의식 공정론'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대 여성 직장인인 서모씨는 "그가 말하는 '실력'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단순히 점수로 계량화된 것만 실력이라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대 남성 직장인 홍모씨도 "이미 학벌과 시험으로 일정한 위치에 올라선,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지대만을 누리고 싶어하는 건물주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만의 공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내건 '여성할당제 폐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20대 여성 직장인 김모씨는 "남성 위주의 리그가 형성된 사회에서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게 지난 30년 간 우리 사회가 만든 공정에 대한 합의였다"면서 "지금까지 사회에서 있어왔던 공정에 대한 모든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주장을 들으니 가슴이 갑갑해진다"고 지적했다.

능력주의식 공정은 '배타적 공정'일 뿐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대표로 당선된 이준석 후보와 최고위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전문가들도 이 대표가 2030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데 우려를 표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이 대표는 청년세대의 불만을 조직화하는 것을 잘 하는 정치인"이라면서 "세대 전체를 대변하기보다는 일부 경향이나 유행에 불과하다"고 봤다. 나아가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대개 주목을 받고 그들이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쉽다"면서 "특히 그가 말하는 공정은 청년 세대 중에서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논리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의 공정론 자체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목소리도 나온다. 이 교수는 "그의 공정은 우리 사회가 출발점부터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한다는 걸 배제할 위험이 있다"면서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실력이 없고 능력이 없다면서 '설 자격이 없다'고 규정하게 된다면 패배적이고 배타적인 공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능력주의는 적자생존을 강화하는 19세기식 사고방식으로, 사회 공동체의 정의를 파괴하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역설했다.

'여성 할당제 폐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합의된 공정 개념은 약자한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여성들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등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는 데도 별다른 대안 없이 할당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몇몇은 지금까지 정치권이 2030세대의 시각에서 접근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공정성을 이야기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지만 문제는 2030의 시각에서 접근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라면서 "청년세대의 문제에 직접 공감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기성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봤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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