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vs 선별 뜨거운 '한국형 기본소득'…내년 대선판 달군다

전문가들 "보편적 기본소득, 소득재분배 효과 없어"
특정목적세론 충분한 재원 확보 어려울 수도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장세희 기자]‘기본소득’ 논쟁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가 꺼내들고 다른 후보들이 비판을 가하면서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다. 각 후보들이 비슷한 성격의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양극화 진단의 정확성, 실현 가능성, 재원 마련 방법, 해법의 진정성 등에서는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반기 이후 정치권이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접어들면 논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전 국민이냐, 선별이냐"= 백가쟁명식 기본소득 논쟁은 여당 내에서 활발하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복지제도’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씨앗통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이 논쟁의 핵심이다. 야당에서는 저소득층에 한정해 보조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지사가 내세운 기본소득은 재산 규모와 소득,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연 50만원부터 시작해 중기적으로는 100만원, 장기적으로는 연 6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전 국민(5200만명)에게 1인당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간 312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재원 조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예산(558조원)의 절반 이상을 기본소득 지급에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지사는 단기적으론 예산을 절감하고, 중기적으로는 조세감면 25원을 축소할 방침이다. 또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 불로소득 토지세 등 ‘기본소득목적세’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향후에 국내총생산(GDP)이 3000~4000조로 늘어나고, 국가 예산 규모가 커지면 재원 마련이 용이하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예산의 절반 이상이 든다고 비판하지만 지급 시점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대선 경쟁자인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이 지사를 협공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재정 여력상 현실 불가능하며, 경제효과가 크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삶의 영역을 소득·주거·노동·교육·의료·돌봄·문화·환경 등 8개로 나누고 각 영역에서 최저 생활 기준을 보장하자는 내용의 ‘신복지제도’를 정책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과 맥은 같지만 생애 주기별 복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이다. 각론을 보면 만 18세까지 아동수당 지급하고, 만 5세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등 ‘맞춤형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이 지사와 다르다.

정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정 전 총리가 공약으로 내세운 ‘씨앗통장’은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가 20년 적립형으로 총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이 역시 맞춤형 복지에 가깝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기존 복지제도의 틀에서 필요한 이들에게 더 두툼하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지사의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야권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공정소득’을 들고 나왔다. 공정소득은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기본소득과 달리 선별 복지다. 기본소득에 줄 돈을 소득하위 50%에게 주면 2배를 줄 수 있어 양극화와 불평등 완화 효과가 더욱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공급 감소로 GDP↓… 세원 확보도 어려워"= 전문가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은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기 때문에 불평등 해소에 도움되지 않고, 재원 마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연 2400만원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근로 의욕 저하로 인해 노동 공급이 감소하면 전체 GDP가 주저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금 지원을 하더라도 소득 분위별로 차등을 두고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두에게 일정한 금액을 똑같이 나눠주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전혀 없다"며 "복지 혜택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재정 여력을 보면서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국가채무는 965조원에 달하고, 국가채무비율은 50% 문턱을 넘보고 있다. 재원 마련 방식에 대해서도 "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신설하는 목적세가 소득세보다 더 많이 걷혀야 할 것"이라며 "목적세의 경우 과세대상이 분명해야 하는데, 실제로 충분한 세원이 확보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세는 98조2000억원 걷혔으며, 전체 세수의 35.2%를 차지한다.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 중부담 중복지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과연 기본소득이 한국 GDP 대비 복지 패러다임에 가장 맞는 방식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기본소득을 논의를 할 때에는 복지 패러다임 전체의 변화,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한 선행 토론이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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