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베르테르' 김예원 '표현하기 어려웠던 '롯데' 이젠 나를 지탱해주길…'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배우 김예원은 거듭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보여준 '롯데'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인터뷰를 신청한 기자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첫 마디부터 "공연을 보셨다고 하면 쑥쓰럽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표현하는 롯데가 관객들 마음에 잘 가닿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돌이켜보니 김예원과의 인터뷰는 그가 왜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었다.

김예원은 지난해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2'를 마친 뒤 1년을 쉬었다. 프랑스와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영어와 그림을 배웠다. 2008년 데뷔 후 가장 오랜 휴식이었다. 김예원은 "(데뷔 후) 끊임없이 일을 했다"고 했다.

13년간 쉼없이 채우기에만 몰두하다 1년을 비워낸 뒤 선택한 복귀작. '베르테르'는 김예원이 2017년 '잭 더 리퍼' 이후 4년 만에 출연하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베르테르'의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을 터.

"TV나 영화에서는 색이 짙은, 개성이 뚜렷한 역할을 많이 했다. 오랜 시간 쉬면서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지는 찰나에 '베르테르'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 '롯데가 와줬구나'라는 느낌이었다."

김예원 [사진= 아트스트컴퍼니 제공]

'베르테르'의 원작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스물다섯 살 때 14주 만에 썼다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베르테르 효과'로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다. 베르테르는 다른 남자(알베르트)와 결혼한 롯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살로 생을 마친다. 한 남자의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

김예원은 '베르테르'가 여느 뮤지컬에서 찾아보기 힘든 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클래식한 느낌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폭발적인 넘버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뮤지컬 하면 으레 떠오르는 쇼적인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함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이 곧 작품의 힘이 되는 그런 뮤지컬이다. 그런 작품에서 한 여인이 갖고 있는 정말 큰 감정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쉬이 접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의미가 저에게는 컸다. 짙은 감성을 표현할 수 이는 작품이어서 베르테르라는 작품이 좀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정답에 최대한 가까이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을 갖기가 어려웠다."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만큼 주인공들이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진폭이 크다. "유난히 완성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연습기간 내내 '아! 이제 어느정도 가까워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아! 아직 아니구나, 아직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연기 감정선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고, 넘버 자체도 처음 접하는 높은 음역대를 요구했고 클래시컬한 창법을 소화하는 것도 너무 생경한 일이었다.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롯데가 이제 이해가 됐다'라는 관객의 평은 가장 힘이 되는 말이었다. "이런 평을 감히 내가 들어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어떤 댓글보다 큰 힘을 주는 댓글이기도 했다. 관객을 설득시키고 롯데의 감정에 대해 풍성한 뭔가를 느끼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했다. 롯데에 대해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이 이해가 됐다고 했을 때 너무 감동스럽고 감사했다. 내가 그래도 틀리지 않게 관객들 마음에 가 닿는 롯데를 연기를 한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감사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를 연기하는 김예원의 공연 장면. [사진= CJ ENM]

김예원은 롯데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롯데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롯데는 알베르트와 베르테르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는 여인. 두 남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나쁜 여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롯데가 천성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했다. 실제 극 중 롯데와 베르테르의 첫 만남에서 롯데의 천진난만함이 잘 드러난다. 롯데는 비를 맞고 있는 베르테르에게 스스럼 없이 우산을 씌워주고는 해맑게 웃는다.

"롯데를 연기할 때 어린아이를 많이 떠올리면서 대입을 시키려 했다. 롯데가 갖고 있는 친절함, 상대에 대한 배려, 천진난만함 이런 것들이 의도적이지 않고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면 관객들이 롯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롯데를 표현했을 때 1막과 2막의 롯데의 모습에 대한 단차가 클 수 있고 2막에서 결혼 후 롯데가 성숙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3년간 빼곡히 채웠던 배우로서의 시간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기를 시작하는 작품. 김예원이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 이유는 되레 다시 많은 것을 채우고 싶다는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예원은 "베르테르를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말한 뒤 다음 말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주저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한 뒤 "내가 과연 다시 무대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라는 말을 주저하던 것과 달리는 꽤 덤덤하게 말했고 덧붙였다. "이게 어떻게 보면 무대에 대해 더 큰 사랑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의 고민일 수도 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를 연기하는 김예원의 공연 장면. [사진= CJ ENM]

김예원의 뮤지컬 데뷔는 2010년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2014년 출연한 '올 슉업'으로 2015 대국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13년의 연기 경력, 올해의 라디오 DJ상을 받을 정도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 MBC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노래 실력,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4년 반 동안 무용을 배웠기에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뮤지컬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더 있을듯 하다.

지난 4년간 무대에 서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김예원은 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좋은 기회가 닿으면 무대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지난해에도 작품 이야기가 오고갔는데 성사가 안 됐다.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너무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무대에 서고 싶다. 그 때가 되면 제 스스로도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그는 '시카고'와 '지킬 앤 하이드'를 출연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다. '지킬 앤 하이드'는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라며 '엠마'와 '루시' 두 역할을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두 캐릭터가 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저에게 더 어울릴 수 있는 역할은 엠마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사실 많이 부족하다. 좀더 노력하고 발전해서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역할도 해보고 싶다. '시카고'처럼 붉은 색이 짙은 에너지 넘치는 작품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롯데라는 인물이 제 안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도록, 흐릿해질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 그런 존재로 남았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저를 지탱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될 것 같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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