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기자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추천 목록만 뒤적이다가 꺼요", "뭘 볼까 고민만 한참 해요."
넷플릭스, 왓챠 등 스트리밍(OTT) 서비스 이용자들 사이에서 정작 영화는 관람 하지 않고, 작품을 고르다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을 겪는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란 관람할 작품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실제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무엇을 볼지 검색하는 시간이 더 길거나 시청을 포기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 세계 OTT 이용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4월 CNBC·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넷플릭스의 전 세계 유료가입자 수는 1577만 명 늘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57억6769만 달러로 추정된다. 넷플릭스는 2분기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넷플릭스의 2분기 매출은 60억48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디즈니 플러스는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부터 16일까지 구독자 수가 전주 대비 3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 수도 47%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도 HBO와 애플 TV+ 또한 신규 이용자 수가 각각 90%, 10% 증가했다.
웨이브, 시즌, 티빙, 아마존프라임비디오, 훌루 등 다양한 국내·외 스트리밍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는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넷플릭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추천목록이나 예고편만 보다가 여가시간을 다 보낸다"고 입을 모았다.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이라는 직장인 강 모(29) 씨는 "코로나19 상황도 심상치 않았고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없어 넷플릭스를 가입했다"며 "그런데 워낙 콘텐츠가 많으니 뭘 선택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라고 밝혔다.
강 씨는 "목록만 훑어봐도 2~30분은 지나간다. 또 하나 볼까 싶어서 눌렀다가 5분 정도 보고 다시 추천목록을 보는 걸 반복하다 보니 정작 본 건 하나도 없게 된다"며 "뭘 골라야 할지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한 현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즐거움이 보장된 안정적인 선택을 하려다 보니 결정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왓챠와 웨이브를 이용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 모(27) 씨는 "서비스마다 콘텐츠가 달라서 두 개를 이용하고는 있는데, 정작 활용은 잘 못하고 있다"며 "한번 볼 때 확실하게 재미있는 것을 보고 싶어서 고민을 오래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참 이것저것 추천작품을 살펴보다가, 결국 전에 재밌게 봤던 드라마나 영화를 고르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다양한 선택지가 심리적 부담감이나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결정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며 "너무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선택하고 보기까지 과정에서 피로감이 과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현대인들이 입시, 취업 등 경쟁 사회를 거치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며 "여가시간에는 잠만 잔다든지, 음악 듣기, 책 읽기 등 취미가 간단한 수준에 그쳤다.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연습이나 적응이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여가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넷플릭스는 이같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새 기능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IT 전문매체 더 버지, 테크크런치 등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셔플버튼'이라는 새 기능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무작위로 재생해주는 서비스로, TV 기기용 넷플릭스 앱에 우선 적용됐다. 매체에 따르면 넷플릭스 측은 이전 관람작과 비슷한 콘텐츠, 목록에 저장해놓았거나 보다가 중단한 콘텐츠 등이 재생된다고 설명했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