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은 살림 밑천' 아직도 이 말을 듣고 살아?…'K-장녀'를 거부합니다

'K-장녀', 코리아(Korea)의 'K'와 맏딸을 의미하는 '장녀' 합성한 유행어
맏이에게 지어졌던 부담과 함께 여성에게 강요되는 역할까지 추가
전문가 "가부장제 모순 비판하는 측면 있어"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슬기 인턴기자] "큰딸은 살림 밑천","우리 딸이 엄마 아빠 마음 몰라주면 누가 알아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K-장녀'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K-장녀'는 'K-팝','K-방역' 등에 이어 코리아(Korea)의 앞글자 'K'와 맏딸을 의미하는 '장녀'를 따와 합성한 유행어다. 주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감정적으로 억압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을 의미한다.

K-장녀의 특징은 장남인 아들 등 맏이에게 지어졌던 부담과 함께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역할까지 추가됐다는 것이다. 주로 부모를 부양할 책임도 지면서 '여자답게' 살가운 모습으로 부모를 대해야 한다는 정서적인 측면까지 추가된 역할을 수행한다.

전문가는 'K-장녀'라는 유행어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K-장녀'를 검색했을 때 가장 상위에 노출되는 콘텐츠인 '아니, K장녀 진짜 다 이런말 듣고 살아? 장녀들의 현실반응'은 조회수 4.6만회에 공감하는 댓글이 약 200여 개가 달리기도 했다./사진=유튜브 채널 '아니' 화면 캡처

스스로를 'K-장녀'라고 지칭한 직장인 A(27) 씨는 "요즘 SNS 등에서 'K-장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본 뒤, 친구들과 대화할 때 잘 쓰고 있다"라면서 "직장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회사의 노비'라고 비하하지 않나. 그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고 밝혔다.

A 씨는 "사실 안 겪어봤으면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남동생을 둔 장녀라면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면서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차별이 나타난다. 은근한 방식이라서 당사자나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이가 아니면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더라. 친구들에게 얘기해도 이해 못 하는 애들이 많았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결혼 안 한다고 했더니 이제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은 안 하시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차별이 드러나곤 한다"라며 "첫째인 데다 딸이니까 애교부리는 역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 등 모든 걸 내가 수행하길 바라는데 이제는 포기했다. 부모님은 매번 제게 실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K-장녀'라고 생각한다는 또 다른 직장인 B(24) 씨는 "나의 어머니의 핸드폰에는 내 이름이 '내 희망'으로 저장되어있다. 반면 남동생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저장이 되어있다. 이를 보고 부모님이 남동생과는 다르게 나에게만 거시는 기대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딸로서 요구되는 감정적인 교감을 아들인 남동생보다 더 많이 요구하신다. 사근사근한 딸, 애교 있는 딸을 요구하는 부모는 많지만, 애교 있는 아들, 언제나 양보하는 아들을 요구하는 부모는 많지 않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K-장녀'는 유튜브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유튜브에서 'K-장녀'를 검색했을 때 가장 상위에 노출되는 콘텐츠인 '아니, K-장녀 진짜 다 이런 말 듣고 살아? 장녀들의 현실 반응'은 조회 수 4.6만 회에 공감하는 댓글이 약 200여 개가 달리기도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역할을 그린 '중전' 캐릭터가 여성 시청 층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중전./사진=넷플릭스 제공

앞서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역할을 그린 '중전' 캐릭터가 여성 시청 층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해당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혜준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 캐릭터를 통해 많은 여성분이 공감했다는 것들이 속상했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속상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K-장녀는 기존에 존재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맏이 콤플렉스'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그 골자다. 주로 맏이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 아래서 요구되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부담까지 함께 지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 등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은 남성보다 훨씬 더 높게 지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 사회센터'(센터장 은기수)가 수행한 '한국의 노인 및 아동 돌봄 가족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 돌봄자의 70% 이상이 딸(35.0%)과 며느리(36.7%) 등 여성이었다.

가사노동./사진=연합뉴스

전문가는 'K-장녀'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tvN 예능 프로그램 '비밀의 정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옛 말씀에 '장녀는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과거에는 공부도 안 시키고 공장에 가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던 존재들이 '장녀'다. 지금도 명확하게 누구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식과 대우 속에서 살다 보니까 주로 '장녀'들에게 책임감이 막중하게 부여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역시 "가부장제 하에서 특히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어온 책임감, 양보, 겸양 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긴 것 같다. 책임감의 대물림, 특히 여성스러움과 장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으로도 보인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로 인해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자녀 수가 감소하고, 비혼을 다짐하는 여성 등이 증가하는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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