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옆에는 정의연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 손모씨를 추모하는 액자와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할머니들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떠나고 있다. 정의연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소재 쉼터 '평화의 우리집(마포 쉼터)'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가 11일 오전 쉼터를 떠났다. 길 할머니는 마포 쉼터에 거주하던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그는 마포 쉼터에서 고 김복동 할머니 등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의 양아들인 황모(61) 목사가 할머니를 직접 모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모셔간 것으로 알려졌다.
길 할머니의 행보는 정의연의 사면초가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회계 부정 의혹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마포 쉼터 고 손모 소장의 극단적인 선택은 위안부 문제에 투신해온 운동가들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한 때 투쟁의 동료였던 이용수 할머니(92)와는 이제 돌아오기 어려운 다리를 건넌 모양새다. 할머니들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진 정의연은 이제 존폐를 고민해야 한다. 피해자 없는 위안부 운동이 가능한가 하는 것에서부터 그 고민을 시작돼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고 손 소장의 장례를 치르며 커진 정의연 내부의 '피해의식'이다. 사흘 장례 기간 정의연을 포함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언론과 검찰을 향한 분노를 키워나갔다. 장례식장 주변에서는 고성과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와 피해의식이 일견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태의 근본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감정적 대응에 빠져 있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당장 회계투명성 담보 등 조직 내부의 규율을 점검하고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발전적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정의연 역시 개혁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3일 1442차 수요시위에서 "과거 부족하고 미숙한 부분을 과감히 개혁하되 운동의 초기 정신을 굳건히 지키겠다"고 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되 국민들이 기대하는 조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의연의 회계 문제는 검찰 수사에서 사실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정의연 스스로 어떤 개혁 방안을 마련할 것인지 차분히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인내심도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전쟁과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할머니들, 그들의 트라우마를 곁에서 어루만졌던 운동가들에게 이 사회가 보여줄 최소한의 예의일 수 있다. 아울러 앞으로 정의연이 취할 발전적인 행보는 위안부 운동을 소리 없이 응원해 온 국민에 대한 최후의 의무가 될 것이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