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30대 여성이 서울역에서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게 이른바 '묻지마 폭행'을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여성은 폭행으로 인해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의 상해를 입었다. 피해자 가족은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라며 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시민들 역시 이 사건을 혐오 범죄로 규정, 일종의 분풀이성 폭행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가해자가 충동적인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경찰은 해당 구역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용의자 특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께 서울역 안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인근에서 여성 A(32)씨가 신원미상의 한 남성에게 폭행당했다.
A씨는 왼쪽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의 상해를 입었다. 가해자인 남성은 폭행 직후 서울역 15번 출구 쪽 모범택시 정류소를 따라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항철도 입구 쪽으로 향하던 중 한 남성이 다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이후 욕설을 하더니 얼굴을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폭행당한 지역이 CCTV 사각지대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A씨의 가족이 피해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리면서 확산됐다. 자신을 A씨의 친언니라고 밝힌 글쓴이는 "이것은 명백한 고의적, 일방적 폭행이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혐오 폭력"이라며 "이 사건은 이제 제 동생의 문제만이 아니고 제 문제이고 우리 가족의 문제이자 여성의 문제이고 결국 사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성을 향한 '묻지마 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에는 울산시 남구에서 모르는 여성을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일면식 없는 여성의 머리를 때리고 편의점에서 미리 구매한 흉기로 위협을 가했다.
여성을 표적으로 한 강력 범죄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절도·살인·강도·성폭력 등 형법상 주요 범죄 중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2만9272명으로 남성(1778명)보다 1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강력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도 크다. 여성은 범죄 발생에 대해 57%가 '불안하다'고 느꼈는데, 이는 남성(44.5%)보다 12.5%p 높은 수치다.
여성은 △범죄발생(57%) △교통사고(49.8%) △신종질병(45.7%) 순으로 불안을 느꼈고, 남성은△교통사고(45.4%) △범죄발생(44.5%) △정보보안(41.3%)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이 같은 사건들을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직장인 B(27)씨는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면서 "어떤 범죄든 피해자가 약자인 경우가 많다. 노인이나 어린이, 여성이 그 예"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여성을 향한 범죄가 많아 무섭다. 혼자 어두운 골목길을 가야 할 때면 항상 길을 돌아서 대로 쪽으로 간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장인 C(27)씨 또한 "묻지마 범죄 피해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면서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게 얼마나 폭력적이냐. 실제 자신이 분노를 느낀 어떤 권력이나 대상에는 화를 내지 못하니까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화를 푸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묻지마 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10월에는 경남 거제에서 20세 남성이 한 선착장 길가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5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다.
피해 여성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 30분 동안 무차별 폭행했다. 특히 이 남성은 범행 전 휴대전화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등을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충동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묻지마 폭행'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실이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우울 등이 내면에 잠재화된 내재화 행동을 하거나 밖으로 분노를 표하는 외현화 행동을 한다"면서 "특히, 좌절하는 경험을 겪었을 때 충동적이고 사회 규범에 대해 반감을 품는 이들이 대개 위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평상시 누군가를 탓할 대상을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