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카톡과 자동차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공부는 안 하니?”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PC 앞이었다. PC 앞을 떠나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어릴 때는 놀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지만 영 불편했다. ‘이 치열한 경쟁 세상에서 저러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잔소리로 이어졌다.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아빠의 잔소리에 아들은 대화 거부라는 방식으로 반발했다.

이렇게 집안의 냉전이 이어지는 동안 주식시장은 뜨겁게 움직였다. 카카오톡으로 우리 일상을 점령한 카카오가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 현대차를 추월했다. 오랜 방학 끝의 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카카오는 시가총액 23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현대차를 넘어섰다.

지난 1분기 카카오의 영업이익은 882억원으로 현대차(8638억원)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은 218.9%나 된다. 현대차는 4.7%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 덕을 봤다. 환율 효과를 제외하면 판매 대수는 오히려 줄었다. 2분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 카카오는 ‘언택트’ 시대 최고의 수혜주로 각광 받으며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올 들어 카카오의 주가상승률은 70%나 된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18% 이상, 코스피는 7% 넘게 하락했다.

아이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온라인 게임쪽은 성장세 뿐 아니라 이익 규모도 여느 대기업 못지않다. 국내 대표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2414억원이나 된다. 지난해 1분기 799억원보다 203.6%나 이익이 늘었다. 올 1분기 엔씨소프트보다 영업이익이 많은 상장사는 채 스무 곳이 되지 않는다. LG화학, 현대글로비스, 삼성SDS, GS건설, 현대건설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엔씨소프트보다 영업이익이 적었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산업지형, 부(富)의 지형이 바뀐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엔씨소프트와 게임업계의 양대산맥인 넥슨의 김정주 대표는 10조원대 주식가치로 이건희 회장 다음 자리를 다툰다. 김 대표와 2위 자리를 놓고 경합을 하는 이는 바이오시밀러 업체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다. 현대차를 제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의 지분 가치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을 합친 것보다 많다.

불과 10년 전인 2010년 시총 상위 10개 종목 중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3곳뿐이다. 부동의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LG화학과 현대차 정도만 남아있다. 현대차는 그날의 등락에 따라 10위권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대신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셀트리온, 카카오 같은 바이오와 인터넷 업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게임 대장주 엔씨소프트도 14위로 호시탐탐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이렇게 바뀐 시장을 보고 있노라니 주식투자 전도사를 자처하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서 고민”이라는 한 어머니에게 존리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스마트폰 안에 있을 수 있다. 부모가 과거의 경험에만 의지해 아이들을 재단하면 안 된다.” 세상은 카톡이 자동차보다 비싼 곳으로 변하고 있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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