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문성 없는 농협중앙회 출신이 CEO로
CEO 뽑는 임추위 지주 회장 대신 비상임이사
"금융전문성보단 중앙회 의중이 더 중요"
중앙회-지주 간 갈등 촉발 되기도
농협 취지 이유로 중앙회 인사 필요 의견도
농협중앙회가 100% 소유한 농협금융지주의 지배구조는 금융사고뿐 아니라 비상임이사와 최고경영자(CEO) 선임으로 대표되는 인사제도에서도 논란을 빚고 있다. 농협금융의 임원후보를 추천하거나 보수체계를 결정하는 비상임이사는 줄곧 농협중앙회 출신이나 농축협 조합장들이 맡아 ‘금융전문성’ 문제가 대두된다.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구성에선 지주 회장이 빠져 계열사 CEO 선임에 금융전문성보다는 농협중앙회의 의중이 더 중요해지는 구조라는 비판이 있다. 다만 농협 설립 취지·근거를 고려해 농업인의 시각이 경영 전반에 투영돼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3월 농협금융지주는 비상임이사에 박흥식 광주 비아농협 조합장을 선임했다. 비상임이사는 이사회에서 경영진 선임 등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임원으로, 중앙회장의 측근 조합장을 선임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다. 박 이사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추천한 인사로 알려졌다. 전임 이사 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은 이성희 전 중앙회장 측근으로 분류된다.
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는 지주의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 위원회 소속이다. 임추위가 대표적이다. 임추위는 금융지주 회장과 사외이사들을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농협은행·농협생명 등 계열사 대표도 각 계열사 임추위에 추천하는 역할도 한다. 다른 금융지주(KB·신한) 비상임이사는 계열사 중 하나인 은행의 CEO가 주로 맡고 있다. 하나·우리금융도 최근까지 은행장이 맡았다.
이 같은 임추위 구조는 계열사에서도 이어진다. 계열사 임추위 내에서도 비상임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며 이 중 중앙회 출신이 있다. 농협금융 주요 계열사 4곳(농협은행·농협생명·농협손해보험·NH투자증권)의 비상임이사 현황을 살펴보면, 농협은행의 경우 비상임이사 2명 중 1명이 농협 조합장 출신이다. 생명과 손해보험은 3명 중 2명이 해당한다. 유일하게 NH투자증권만 조합장 출신이 아닌 사람이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농협금융 임추위에 지주 회장이 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하다.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계열사 대표 후보를 추천하는 위원회에서 지주 회장이 빠진 곳은 농협금융이 유일하다. 그 대신 농협중앙회 인사인 비상임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했다고 본다면, 농협금융 회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중앙회 의중이 더 중요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계열사 CEO도 중앙회 출신이 많다. 농협은행·생명·손해보험·카드·저축은행·캐피탈 전·현직 CEO는 모두 중앙회 경력이 있다. 2014년 인수합병(M&A)을 통해 농협금융에 편입된 NH투자증권만 유일하게 전·현직 모두 중앙회 경력이 없다.
이에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인사권 갈등이 촉발되기도 했다. 지난달 NH투자증권 사장 선임을 놓고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 사이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기를 마치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후임으로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유 전 부회장을 직접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장은 유 전 부회장의 금융·증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NH투자증권은 내부인사인 윤병운 NH투자증권 부사장을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농협의 설립 취지 등을 고려했을 때 조합장이 비상임이사로서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농협은 근본적인 존립 목적과 경영이념에 대해 ‘협동과 혁신’을 내세운다. 협동과 혁신으로 농업인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고객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농협의 존재 이유에 대해 농업인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라고도 밝힌다. 농업인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도 추구한다.
농협법에 의해 농협금융지주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당성도 있다. 농협법 제142조의 2에 따르면 자회사 업무수행 시 중앙회의 회원 및 조합원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할 수 있다. 금융지주를 포함해 계열사 CEO와 비상임이사도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임명할 수 있는 것이다.
조합장들은 상호금융 부문을 지역에서 총괄하는 직책을 겸하고 있어 금융전문성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역 농축협 조합장은 신용사업을 지역에서 총괄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금융전문성 문제 제기는 옳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비상임이사에 대해 상법상 주주권한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비상임이사는 상법상 주주권한이기 때문에 당국이 주주권한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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