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곤기자
강주희인턴기자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놀이터.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나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한 가운데 이른바 '아이들의 놀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교 학원 등에서 공부하느라 아예 시간이 없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어린이들 입장에서 희망사항으로 전락했다.
최근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마주친 적이 없다고 밝힌 30대 직장인은 "지난 연휴 기간에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면서 "다들 집에만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놀이터를 볼 때면, 애들이 안쓰럽기도 하다"고 했다.
한 40대 학부모는 "가끔 저녁 시간에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오기는 하는데, 이건 운동의 성격이다"라면서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와글와글' 노는 그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막 뛰어놀고 그렇게 커야 하는데 부모 된 입장에서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6개국(2019년 기준)이 지키기로 했다. 협약에는 어린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가 담겨 있다.
아동의 놀 권리는 이 협약 31조에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을 갖고 문화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놀 시간'이 없어, 놀이터 등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들의 권리 권한이 침해 받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시간 빈곤 상황을 파악한 '2018년 아동 종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9∼17세 아동의 70% 이상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항상 부족하다, 가끔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연령(12∼17세)이 높아질수록 시간 부족에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로는 △학교(27.5%), △친구 관계 및 학교 밖 활동(27%), △학원 또는 과외 수업(23.3%), △자기학습(19.6%)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 학원 또는 과외 등 공부하느라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는 응답이 전체의 70.4%에 달하는 것이다. 이 조사는 만 9∼17세 학생 2219명을 대상으로 했다. 9∼11세 743명, 12∼17세 1476명이 참여했다.
청소년들은 시간 부족 문제로 '방과 후 희망 활동'과 '실제 하는 활동'의 격차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 특히 놀이터, PC방 등 친구들하고 놀기를 '희망한다'는 응답이 '실제 놀고 있다'는 응답보다 18.9% 높았다.
반면 '학원이나 과외공부 하기'와 '집에서 숙제하기'는 희망하는 것보다 실제로 하고 있다는 응답이 각각 27.9%와 11.1%나 높게 나왔다.
학원가.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는 처지다. 일부에서 욕심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학업 과정서 '내 아이만 뒤 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어 학원 등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다고 밝힌 40대 직장인 A 씨는 "우리 집의 경우 학원을 많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학교 수업만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은 부모들이 시간을 내어 최대한 놀아주려고 한다. 물론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토로했다.
30대 중반 학부모 B 씨는 "학원은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면서 "부모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느냐 하는 것은, 솔직히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다만 아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부모가 늘 신경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는 낮음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국제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 참여한 22개국 아이들을 비교한 결과 한국 아동의 '주관적 행복감'은 19위(84.4점)에 그쳤다.
알바니아(97.2점) 그리스(94.1점) 몰타(91.7점)가 1~3위였다. 대만(84.0점) 네팔(83.2점) 베트남(82.4점)만 한국보다 낮았다. 한국 3171명 등 40개국에서 만 10세 아동 약 9만 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는 데이터 종합이 끝난 22개국을 비교했다.
연구진은 돈, 시간 사용, 학습, 관계, 안전한 환경, 자신에 대한 만족 등 6개 지표로 행복지수를 비교했다. 한국 아이들은 시간 사용에 대한 만족감이 22위로 가장 낮았다. 이는 학원 수강 등 높은 사교육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초등학생의 82.5%가 사교육을 받았다. 주당 사교육 시간은 평균 6.5시간이었다.
전문가는 아이들의 놀 권리 보장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아동의 놀 권리가 생활공간에서 아동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가 강력한 지원을 지속해서 제공해나가고 지역사회 민간주체들이 다양한 놀이사업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