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 돈, 세금과 기부금의 갈림길

"신부님, 저를 체포해 주십시오. 저는 도둑놈입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역작 '레 미제라불'에 나오는 대사다. 소설 속 주인공 장발장이 회심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미리엘 신부의 용서보다는 소년 프티 제르베가 떨어뜨린 동전 한 닢을 발로 밟아 훔쳤던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은식기 절도행위를 용서받고서도 그보다 훨씬 하찮은 어린아이의 코 묻은 돈조차 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자신에게 스스로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도둑놈'이라고 절규한다.

우여곡절 끝에 장발장은 사업가로 변신해 막대한 돈을 번 뒤, 1830년대 7월 혁명의 격동기에 태어난 고아 코제트에게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다. 소설을 세금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면, 돈 때문에 죄수가 된 장발장은 기부라는 행위를 통해 돈을 버림으로써 지고지순의 경지에 도달하는 구원의 길로 접어든다.

도둑 장발장의 뒤를 집요하게 뒤쫓는 자베르 경감에서 보듯 당시는 경찰국가 시절이었다. 세금의 역할은 미미했다. 코제트의 모친인 거리의 여인 팡틴느의 구차한 삶을 국가가 어찌 구해줄 방도가 없었다.

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경찰국가 수준을 넘어선 복지국가다. 국민의 기본적 복지와 행복 추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단과 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현대를 '세금 국가'라고 단언한다(89헌가95 결정). 예를 들면 연간 소득이 100억원인 사람이 20억원을 사용하고 80억원은 저축했다고 하자. 현행 세제는 소득세 42%와 부가가치세 10% 및 상속세 50%를 부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단순하게 세율만 곱해 계산하면 소득세 42억원(100억원×42%)과 부가가치세 2억원(20억원×10%) 및 상속세 18억원((100억원-소득세 42억원-소비액 20억원-부가가치세 2억원)×50%)을 낸다.

100억원을 벌었지만 세금을 내고 나면 결국 18억원밖에 남지 않는다. 시쳇말로 3대를 못 가서 100억원 대부분은 국가에 귀속되고 만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는 것은 작금의 n번방 사건 관련자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런 점을 인지하는 이성적 인간이라면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본인의 뜻대로 좋은 곳에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게 기부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재벌기업(법인)의 기부는 더러 있는 반면 재벌(개인)의 기부금은 미미하다. 바람직하지 않다. 법인기업의 주인은 주주이지 재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기부금이 진정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난국을 어찌 헤쳐나갈 것인가. 적자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그 부채를 후대에 넘기므로 소망스럽지 못하다. 증세가 어렵다면 개인의 돈을 기부의 길로 적극적으로 유인해 코로나19의 퇴치에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병균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침입한다. 따라서 이를 막는 데 무엇보다도 사회적 연대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긴요하다. 연대(連帶)란 어깨동무의 또 다른 표현이고 기부행위가 표징이 될 수 있다. 본질상 종속된 것(돈)은 주된 것(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대재산가들이 아낌없는 기부를 하는 배경에는 기부를 유인하는 세금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도 개인의 기부행위가 활성화되도록 세제개선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본디 착하고 올곧은 심성을 지녔다. 장발장처럼 '나는 도둑이다'라고 고백하고픈 사람이 적지 않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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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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